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 전에 주한미군 가족 대피 명령을 안보참모들에게 하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초까지만 해도 미국이 실제 대북 군사옵션 실행을 고려할만큼 한반도 정세가 급박하게 흘러갔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하지만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북미 간 물밑접촉과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외교 등을 통해 극적으로 대화 국면이 조성되면서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 성사로 이어질 수 있었다.
◇“트럼프, 북한과의 전쟁을 실제 가능성으로 인식”
미 CNN방송은 16일(현지시간) 4명의 트럼프 행정부 전·현직 관리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허버트 맥매스터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으로부터 일일 정보브리핑을 듣는 동안 8000명의 주한미군 가족들에게 한국을 떠나도록 명령했다고 전했다. 이후 맥매스터 보좌관은 국가안보회의(NSC) 참모들에게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대통령 메모를 작성토록 지시했고, 완성된 메모는 존 켈리 비서실장에게 전달됐다. CNN은 “이 명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전쟁을 실제 가능성으로 봤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라며 “명령이 전면 이행됐다면 북한과의 긴장을 고조시켜 한반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만드는 도발적 조치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나 켈리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이 북한을 자극할뿐 아니라 평창 올림픽을 통한 외교적 해법을 무산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CNN은 덧붙였다. 두 사람은 트럼프의 명령을 향후 한국에 배치될 미군의 가족동반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조정하도록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했다. 이 타협안으로 대통령 메모가 작성됐지만 시행되지는 않았다. 당시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가족 동반 문제를 제기했다는 보도가 현지에서 나왔지만 미 국방부와 국무부는 이를 부인했다.
주한미군 가족들이 한국에서 철수한다는 것은 미국의 대북 타격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다. 때문에 이 같은 백악관의 분위기는 연초 북미 간 긴장이 실제 전쟁위기로 이어지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됐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당시는 빅터 차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의 낙마가 이른바 ‘코피 전략’이라 불리는 제한적 대북 선제타격을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오면서 미국의 군사옵션 실행에 대한 논란이 일던 상황이었다.
◇평창 계기로 극적인 반전
지난해 가을부터 평창 개막 직전까지 이어진 긴박한 분위기는 정부 고위관계자가 15일 기자들에게 평창 전후의 드라마틱한 반전을 설명한 내용과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CIA(중앙정보국)의 KMC(코리아임무센터) 앤드류 김을 만났는데 군사옵션이 그냥 강경론자들의 협박용 메시지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진행되고, 준비되고 있는 사안이라고 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20여개 시나리오를 놓고 실행 방식과 북한 반응에 따른 후속 행동까지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준비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KMC는 지난해 5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진 CIA 산하 대북 조직이다. CIA 한국지부장 출신인 한국계 미국인 앤드류 김이 센터장을 맡고 있다. CIA 한국지부장 출신인 한국계 미국인 앤드류 김이 센터장을 맡아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북 문제 관련 핵심적 조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를 CNN보도와 연결해보면 미국은 대북 군사옵션 실행을 면밀히 검토했으며, 강경한 분위기가 연초까지 이어졌다는 설명이 된다. 하지만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북미 고위급 대표단의 물밑접촉이 진행되면서 대치 국면이 대화 국면으로 바뀌게 된다.
이 관계자는 “북미 대화 국면 조성에 앤드류 김 센터장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앤드류 김이 당시 고위급 대표단으로 내려온 맹경일 북한 통일전선부 부부장과 비밀리에 만났다”며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회담을 앤드류 김과 맹경일이 만들었다”고 말했다.
앤드류 김은 북미대화가 본격화한 이후 비핵화 협상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 9일 2차 방북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났을 때 폼페이오 장관의 오른쪽에 배석한 모습이 북한 관영매체를 통해 공개됐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과 북한에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3명 석방 문제, 북미회담 일정과 장소, 비핵화 의제 등을 폭넓게 논의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