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창문외과 대표 원장
최근 '마지막 의사는 벚꽃을 바라보며 그대를 그리워한다'라는 소설을 읽었다. 매우 유능하고 절대 포기를 모르는 의사와 치료받아도 치유될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에게 치료법에 따른 부작용, 치료 실패율, 치료과정에서 겪어야만 되는 삶의 질의 하락 등을 따져 치료를 거부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조언하는 두 의사의 갈등이 글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아무래도 픽션이기에 현실에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아주 극단적인 성향의 캐릭터를 만들어 스토리를 끌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 더 생각해볼만한 화두를 던져주는 소설이었다.
두 의사 모두 환자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 방향성은 정반대다. 필자 또한 외과의사로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한가닥의 희망만 있으면 뭔가 의학적 노력을 해야만 한다는 명제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신념으로 살아왔지만, 뭐가 옳다 그르다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가 있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선택해야 할 것이 많아진다. 당장 점심시간에 무엇을 먹을 것인지 고를 때도 망설여지는데 하물며 생명이나 건강에 큰 영향을 주는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오죽하겠는가.
누구든 항상 최선의 선택을 내리고 싶을 것이다. 살다보면 심사숙고하여 좋은 결정을 내리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아, 그때 다른 선택을 내렸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남는 결정을 내렸던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낙관적 경향이 있는 사람에게도 또는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에게도 좋은 결과 또는 나쁜 결과는 예측불가하게 다가온다.
의사들이 아무리 의학지식으로 무장하고 친절하게 조언한다고 해도 치료의 결과에 대한 개인적인 편차까지 완벽하게 예상할 수는 없다.
의료 영역에서 수술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항상 뜨거운 감자다. 예전에는 복잡한 문제는 전문가가 알아서 결정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전문가는 선택을 잘 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기만 하면 좋겠고 결정은 자기가 내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
필자가 전문으로 하는 항문수술에 관해서는 그런 논쟁이 비교적 적은 편이어서 개인적으로 다행으로 생각한다. 간단하고 명쾌한 지침이 있으면 심각한 결정장애를 겪지 않아도 된다.
항문병 중에서 가장 흔한 병은 치핵이다. 배변 시 항문이 돌출되는 치핵이라는 병은 그것이 돌출하는 정도에 따라 1도~4도로 나눈다.
1도는 배변 후 돌출되지 않는 크기의 치핵을 말한다. 2도는 배변 시 약간 돌출되지만 바로 원위치하는 치핵이다. 이러한 1, 2도의 치핵을 경증 치핵이라고 하며, 1, 2도치핵은 보존적 치료가 우선이다.
규칙적인 배변습관을 유지하고 되도록 음주나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는 등의 생활습관 관리를 하거나 배변 후 온수 좌욕을 하면 증세가 완화된다. 통증이나 출혈이 보일 때는 좌약이나 약제 등을 사용하면 증상이 호전되므로 굳이 수술받을 필요가 없다.
반면에 3도 치핵은 배변 시 돌출되어 바로 들어가지 않거나 밀어 넣어야 들어가게 된다 이런 경우는 수술이 원칙이다. 4도 치핵은 밀어 넣어도 들어가지 않게 되는데 아무래도 이 정도로 심해지기 전에 수술하는 것이 좋겠다.
간혹 항문 주위에 염증이 생기는 치루나 항문주위농양이란 병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종류의 병은 빨리 수술하는 것이 좋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