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걷는 광기의 욕망
극은 빼뜨르(남동진 분)의 에피소드에서 시작된다. 무대가 열리면 빼뜨르가 전날 과음을 한듯한 일상의 표정으로 전화를 받는다. 여자 친구 야나(김지성 분)와 헤어져 그녀 머리카락을 잘라 소장을 하면 야나가 돌아 올 것이라는 미신을 믿고 발칙한 행위를 감행하지만 알레슈 고모의 머리카락을 실수로 잘라오는 바람에 소동이 벌어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시종일관 극은 빼뜨르를 중심으로 변태적인 성적욕망을 보이는 모우카와 성도착증 환자인 이웃집 사람들,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공허함과 우울, 상실감에 빠진 조각가 실비에, 타인의 내면과 공감과 교감을 이루는 관능적인 가정부, 알츠하이머에 시달리는 빼뜨르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피와 헌혈에 집착하는 엄마 등이 에피소드에 교차적으로 일상을 움직이고 만나며 공허한 내면을 마주한다.
그러나 <일상의 광기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광기는 특수하거나 유별나지 않다. 불안전한 내면은 일상의 불안과 우울 그리고 누군가로 부터 공감과 시선의 겹핍과 사랑의 전류가 단절되었을 때 파괴되고 정신적 균열을 들어내게 된다. 불안한 정서는 내면에 찬 광기의 연기로 흘러나온다. 극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불안전하며 불안한 상태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거나 사랑을 받지 못한 결핍된 상태’를 보이기도 한다.
‘성도착증환자’인 이웃집 부부는 일탈적인 섹스행위가 누군가로 부터 시선을 받았을 때 성적욕망을 채울 수 있는 행동을 보이고 세면대를 여성의 도구로 그려놓고 변태적인 행위를 보이는 모우카는 극한된 사랑의 결핍성을 드러낸다. 누군가로부터 진정한 사랑을 느끼거나 애정의 전류가 단절된 불안한 일상으로 성적욕망을 만족한다.
부모 보호에 살아가는 40대 실직 남 빼뜨르도 전류가 단절된 채 살아간다. 엄마(전국향 분)은 아들에 대한 집착이 강한데 집착된 상태가 정신균열로 들어나는 것은 누군가로부터 느끼지 못한 시선과 공감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결핍된 우울성을 보인다. 40년을 함께 살아도 부부는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고 말하고 바라보는 내면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부부는 서로 옷을 바꿔 입는 행동을 한다. 그 사람의 내면을 이해하는 과정은 ‘서로 되어보기’, ‘마주보기’를 통해 손상되고 결핍된 내면을 채우고 극복하려는 행위다.
엄마의 이러한 결핍의 집착성과 타인으로부터 균열된 사랑의 전류를 자신의 행위를 통해 공허한 내면을 보상받으려는 행동으로 이어지는데, 그것은 분쟁국가 체첸으로 자신의 피를 채혈(헌혈)해 타인에게 흐르길 희망한다.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에도 채혈행위는 멈추질 않는다. 결핍된 사랑의 부재는 누군가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의 전류는 피를 수혈함으로써 결핍을 채우려는 욕망이며,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러시아 서부 공화국 체첸에서 들려오는 분쟁의 폐허, 전쟁의 공포, 기아 등에서 자라나는 광기의 인간들을 향해 동일화된 시선으로 사랑의 전류를 보내는 것이다.
공감과 시선의 차이로 분열된 인간, 그 속에서 이념으로 갈라진 국가, 테러와 공포로 이어지는 보이지 않는 전쟁의 연속에서 시달리는 세계도 인간의 체온이 타인의 내면으로 전류가 흘러가지 못하면 인간은 차이의 균열들로 파괴되어 광기의 내면이 자라날 수 밖에 없다. 작가는 체코와 슬라바키아의 오래전 분쟁의 역사를 반복된 시선으로 교차하면서 동일화된 내면의 시선으로 인간의 체온이 필요한 그들을 향해 시선을 보내는 것이다. 마치 반복적인 세계전쟁역사를 몸으로 막아서는 것처럼.
이러한 엄마의 행동은 신문에 집착을 보인다. 그루지아 지진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뉴스와 사회문제를 스크랩해 빼뜨르 집으로 보낸다. 뉴스는 신문 스크랩으로 박재된 채 누군가의 시선을 기다린다. 무대 전체를 덮을 정도로 놓여있다. 여전히 누군가의 관심과 시선을 기다리는 상태로 세계풍경도 불안전하다. 이러한 엄마의 집착은 40대 아들에게 “신발도 제대로 살줄 모르고, 물건도 제대로 고르지 못하는 아들”로 바라본다. 그녀의 집착과 불안은 정신적 분열이다.
자신 외 그 누군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며 그녀 시선으로는 빼뜨르와 남편이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받아들여진다. “아무것도 관심이 없다. 뉴스도 관심이 없고, 그루지아 지진에도 관심이 없고, 그저 맥주 속 거품만을 재미있어해”라고 남편을 향한 극중 대사는 누군가 하지 못하는 행동, 타인은 무관심, 세상과 타인 바라보기에 서투른 엄마다. 그녀의 내면은 남편과 동일화된 서로 “되어보기”를 통해 옷을 바꿔 입고 서로 느끼지 못했던 차이의 공감과 체온을 느껴보는 시도를 한다. 이러한 공감과 차이, 서로를 마주하는 시선이 완전해 졌을 때 채혈과 헌혈은 비로소 온전한 인간의 피로 체첸을 향할 수 있다.
엄마는 빼뜨르한테 체첸으로 보낼 피가 필요하다며 아들에게 피를 뽑으라고 한다. 무대는 순간 이 두 사람에게 집중되고 떨리는 손으로 엄마 팔에 주사기를 꽂고 피를 채혈한다. 피는 인간의 체온이다. 다른 피가(체온) 섞여야 불안하고 불완전한 광기의 내면은 온전한 인간의 혈류로 흐를 수 있는 것이다. 상실된 불안한 인간의 내면은 반복적인 채혈행위를 통해 불안전한 욕망을 채우려는 것이다.
타인과 개인의 대한 마주보기와 공감, 체온을 교감하는 행위는 작품에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빼뜨르와 아버지가 서로 전구가 입속에 들어갈 수 있는 테스트를 해보자며 전구를 넣고 불이 켜지는 장면이다. 공감의 체온과 타인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선의 어긋남은 서로에 대한 내면의 공감·시선·사랑의 체온이 연결되었을 때 광기를 전소하는 희망의 불이 켜질 수 있다. 이러한 공감과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대한 결핍과 채움은 극중에 등장하는 성도착증환자 모우카와 이웃집 여인들 에서도 발견된다.
모우카(신문성 분)은 가정부 안나(조예현 분)를 통해 성적 욕망을 채우는 인물이다. 세면대에 관능적인 여성을 상징하는 도구를 부착해 자위행위를 하는 성도착증 환자다. 모우카의 변태적인 성적 욕망의 내면은 타인으로 부터 진정한 사랑을 느끼지 못해 일탈적인 행위를 통해 성적대리만족을 한다. 가정부의 진공청소기를 성적도구를 상상하고, 가정부의 육감적인 행동은 모우카의 성적욕망을 부추긴다. 이러한 인물내면의 상실감을 발레공연을 본 후 가정부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되고 극복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다.
발레공연을 보러간 빼뜨르와 모우카는 발레 무용수(김도영 분)의 예술행위를 진정한 내면으로 전달받지 못한다. 가정부 안나는 몸짓을 내면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한다. 발레동작을 능숙하게 이해하고 해박한 발레 지식을 보이는 안나는 동작 하나하나에 의미를 이해하며 마치 무용수 몸짓을 언어로 표현한다. 성도착증 환자가 바라본 안나는 인간의 내면을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겨지지만 그녀의 내면은 매우 정상적인 상태로 이해될 수 있다. 이 극중극 발레 장면에서 연출은 소통의 부재, 개인과 타자의 공감의 어긋남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일탈적인 욕망을 조롱과 희극적인 장면으로 환치한다. 인간의 내면과 세포에 흐르는 피는 개인과 타자가 공감의 시선으로 연결되고 수혈되어야 그 불완전한 상태에서 벗어 날수 있는 것이다.
‘인디언 춤’ 시선·공감·사랑으로 흐르는 혈류(血流)
두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오랜 된 동굴 벽화에 그려진 ‘인디언 춤’을 상징하는 몸짖으로 심장을 뜻하는 걸음, 피, 심장과 피를 흘리는 동작, 죽음 등으로 모우카는 안나에게 배운 무용 동작을 연속적으로 수행함은 공감의 행위를 통해서만 타인의 심장으로 피의 전류가 연결되어 성도착증 증세에서 벗어나게 된다. ‘인디언 춤’ 배우기는 진정한 내면으로 안나를 바라보고 사랑하게 되는 계기를 형성한다. 그러나 결국 안나가 그를 떠나고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 구입한 ‘매혹적인 마네킹인형’을 인간과 동일화된 존재로 여겨지도록 에바(윤안나 분)라는 이름을 붙인다. 모우카는 안나가 떠난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 세면대에 변태적인행위를 하다가 성기를 찔려 피를 쏟아낸다.
무대는 병원 엘리베이터 안으로 변화되고 피를 흘리며 성기를 잡고 쓰러져 있는 모우카, 그 안에 빼뜨르, 모우카가 겹쳐진다. 안나는 빼뜨르와 헤어진 뒤 공허한 상실감을 벗어나기 위해 밤중에 공중전화 박스로 무작위로 전화해 신호음에 걸려든 남자 20명과 일탈적인 사랑을 나누었다고 고백하고 빼뜨르는 이웃집 작곡자 남자와 애인과의 은밀한 행위에 관객이 되어 돈을 벌었다고 말한다. 두 사람의 진정한 내면으로 흘러들어가 못하는 교감의 어긋남을 모우카의 일탈적인 행위로 발생되는 장면과 집합적으로 배치함으로써 개인과 타인의 소통 교감, 시선, 사랑이 부재된 인간들의 내면의 현상을 들어낸다.
빼뜨르의 시선과 내면의 혈류는 타인과 연결된다. 마네킹이 실제 살아 움직이는 현상과 담요가 살아 날아다니는 것으로 시선을 들어내는 것도 극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빼뜨르만이 공감과 심장의 뜨거운 피의 전류를 흘려보낼 수 있는 정상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전한 인간들이 괴물로, 광기의 분화구를 사회로 이동시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가해의 책임은 사회현상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시선은 뉴스를 보는 빼뜨르와 야나를 통해 그려지는데, 익명의 남자가 힐튼호텔에 불을 질러 호텔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불구덩이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장면이다. 무대는 일순간에 연기와 쏟아지는 화염의 장면으로 바뀌고 극 속에 등장한 일상의 일탈적인 광기를 매단 인물들을 이 장면에서 소환시킨다.
마치, 광기의 욕망은 화재 더미로 미쳐가고 쓰러져 가는 장면으로 연결된다. 여전히 이들의 광기의 욕망이 흐를 수밖에 없는 가해의 책임은 사회로 향하고, 광기를 전소하지 못하는 현재가 된다. 이러한 현상 속에 빼뜨르처럼 정상적인 삶을 살아보려고 노력해도 비정상인이 될 수밖에 없는 세상풍경이다. 시인으로 돌아가도 인간과 세상은 시의 영감이 되는 소재가 될 수 밖에 없으며, 언어로 기록되어야 할 역사이자 동시대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을 버리고 빼뜨르는 자신과 생활도구들을 박스로 포장한 체 택배는 체첸으로 향한다. 체첸은 인류모두가 시선을 보내고 사랑의 시선으로 구원해야할 도시다. 화약 같은 인간들의 광기가 자라나는 도시는 시선, 공감, 사랑으로 차이와 체온들이 혈전되어 인간들 삶은 불협화음으로 뒤틀린 광기가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절망의 도시다.
빼뜨르가 인간의 분노와 광기가 자라나는 절망의 도시를 떠나는 것은 은유적인 죽음이다. 그가 체첸으로 향하는 것은 그가 쓰고자 하는 시의 온기가 체첸으로 향했을 때 인간의 절망과 죽음을 희망으로 감싸 안을 수 있다는 상징의 은유다. 공감과 시선, 피와 인간의 체온이 개인에서 타자의 가슴으로 흘렀을 때 시인의 언어는 절망과 어둠은 세계가 아닌 희망의 언어로 그려질 수 있는 세상이다.
극의 마지막 장면에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듯 맨홀을 열고 말하는(최무인 분)의 대사가 가슴에 박힌다. “많은 사람들이 미쳤다고들 말하지만, 완전히 정상이라는 게 그들의 비밀이지, 주위를 살펴보면 정신 나간 것 같은 수많은 사람들을 보게될 거야. 하지만 진짜 미친 사람은 보지 못할 거야 (중략) 진짜 미친다는 건 천재나 절대음감처럼 절대 드물거든, 미친 행동은 하지만 그건 제정신에서 하게 될 거야”
배우들의 조합과 연기
빼뜨르 젤렌카는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일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순, 고독 , 상실, 불안과 우울성이 불안전한 인간의 내면을 그리며 광기의 욕망으로 증폭될 수 있는 현대사회의 현상을 웃음으로 비틀고 조롱한다. 비극적인 인간들의 내면을 희극적으로 장면을 배치해 웃음 속에 스며들고 있는 인간들의 불안전한 욕망을 쓸어 담고 있다. 이들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동일한 가슴의 혈류가 흐르는 공감, 시선 마주보기, 사랑이다. 극중에서 인형 에바가 실제 인간으로 살아나는 장면도 이러한 관점에서 장면이 튀지 않게 잘 도려냈다.
서지혜 연출은 방대한 에피소드를 때로는 직결와 병렬로 배치해 극의 입체감을 나타낸다. 때로는 이러한 사회현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간결하면서도 명료한 미장센으로 장면을 배치해 인간의 광기가 스며드는 현상을 웃음과 비극적 장면으로 교차되는 바라보기를 시도하고 불안한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형상화 시켰다. 이번 무대가 두 번째 무대인데도 불구하고 배우들을 노련하게 장면으로 배치하고 연결하는 시선도 예리하다.
광기의 욕망으로 무대를 움직이는 배우들의 연기도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특히, 빼뜨르 역의 남동진은 절제되고 편안한 연기를 유지하며 극중 인물을 과하게 들어내지 않음으로써 내면의 욕망을 표현하고자하는 역의 종점에서 정·중·동을 이루는 절제와 표현으로 인물의 내면과 캐릭터가 합(合)된 연기를 보였다. 또한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아버지로 분한 중견배우 김귀선은 부인, 빼뜨르, 실비에를 통해 변화되는 인물의 내면과 캐릭터를 섬세한 연기로 표현했다. .
변태적인 욕망과 행동을 들어내도 미워할 수 없는 한 남자를 품게 만들며 작품을 시종일관 웃음으로 몰고 가는 모우카역 신문성은 이완도 연기로 균형을 유지하며 무대를 활력 있게 그려냈다. 무대에서 잘 노는 배우다. 전국향, 남미정은 숙련된 연기로 작품을 탄탄하게 잡아 주는 역할을 했다. 최무인, 김지성, 임정은, 조예현, 지남혁 등은 에피소드 틈새들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으며 살려낸 캐릭터로 극을 끝까지 지켜냈다. 발레장면을 한 무용수(김도형 분)도 인상적인 극중극을 만들었다.
▶극단 <프로젝트 아일랜드>는 2012년도 창단공연인 《아일랜드》를 통해 배우와 서지혜 연출이 주목을 받았다. 이후 연극 아일랜드를 계기로 연극의 정신을 잊지 않고자 극단명도 작품과 동일하게 했다. 연극 아일랜드의 메시지인 인간은 타인의 대한 책임이 있다는 말을 극단의 가치로 삼으며 21세기 연극이 가져야 할 책임에 대해 진진한 탐구를 해 나가는 극단이다. 서지혜 연출은 <황금밥 식단>, <현장검증>, <더라인>, <신문>, <대머리여가수>, <트로이의 여인들> 등 다양한 작품을 연출하면서 무대를 형성시키는 예리하고 뛰어난 감각으로 주목 받고 있다. 일본 홋카이도연극재단 올해의 연극대상과 연극베스트3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해 선돌 극장에서 초연하면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