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으로 진단받은 38세 A씨는 3년 전부터 시험관시술을 받고 있다. 반복적 시술로 점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주사 용량을 늘려보지만 채취 난자 수는 고작 2-3개이고 그 수가 점점 줄고 있다. A씨는 나이에 비해 난소 기능이 노화돼 호르몬주사에 반응을 하지 않아 난자 회수율이 낮다. 35세 이후 급격히 난자 기능이 감소해 월경 기능은 유지되도 배란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건강보험에서 시험관시술 비용을 지원하지만 아무리 비싼 호르몬제를 사용해도 난자 반응이 없으면 임신은 어렵다.
#2.
37세 미혼 B씨는 지난해 백혈병 진단 받아 항암치료를 하고 있다. 항암제에 의한 난소기능 저하가 염려돼 치료 전 난소 조직을 일부 채취해 냉동 보관하고 있다. 치료 후 완치되면 보관된 조직 일부는 자가이식 받고 일부는 체외배양해 난자를 얻는 시험관시술을 받을 계획이다.
국내 연구진이 A·B씨와 같은 난임 부부가 난자를 반복적으로 채취하는 데 따른 고통을 덜어주고 시험관아기 시술 성공률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새 시험관아기 시술법을 개발,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구승엽(사진) 교수 연구팀은 ‘난포 체외성숙 동물모델’을 이용, 다수의 난자를 단번에 획득하는 신기술을 개발, 국제 학술지에 보고했다고 15일 밝혔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난자는 체내의 난포에서 충분히 성숙한 다음 정자를 만나 수정이 이뤄지지는 게 생리에 맞다.
따라서 시험관아기 프로그램에서 난자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난자를 이용해야 할 경우에는 호르몬 주사로 과배란을 유도한 후 난포 조직을 몸 밖으로 꺼내 시험관에서 난자로 배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관정을 거쳐 정자와 인공수정을 시키고 다시 자궁 안에 이식하는 것이 흔히 말하는 시험관 시술 프로그램이다.
이때도 성공률이 30% 정도에 머문다. 왜냐 하면 난포를 난임 여성의 체외로 꺼내 몸밖에서 배양할 경우 오로지 단 1개만 수정 가능한 난자로 성장하게 되기 때문이다(그림 참조).
<서울대병원 구승엽 교수팀이 실험에 성공한 복수난자 배양법 모식도>
연구팀은 이를 개선할 목적으로 복수의 난포더미 체외성숙 동물모델 개발에 나섰다. 체외 성숙 유도 시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의 성숙 난자를 동시에 얻기 위해서다. 연구팀은 복수의 성숙 난자를 배양할 수 있게 되면 그만큼 이식용 수정란을 더 많이 만들 수 있고, 성공률도 배가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보통 체내에 다수의 난포 중 하나가 수정 가능한 난자로 성숙되는데 이때 억제물을 분비해 이웃한 난포 성장을 방해한다.
연구팀은 수정될 난포 선택에 혈관수축 유도인자인 안지오텐신II가 관여한다는 것에 착안해 안지오텐신II 발현을 조절해 다수 난포를 동시에 배양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안지오텐신II를 첨가해서 배양한 난포더미는 기존 단일난포 배양에 비해 성숙난자 회수율이 평균 2.6배 이상 증가했다. 난자의 수정률 또한 차이가 없었다.
난포 체외성숙 모델은 암 환자 등에서 미리 채취해 냉동 보관했던 난소를 체외에서 배양해 수정 가능한 난자를 얻는 생체공학 기법으로 최근 가임력을 보존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구 교수는 “난포와 난자 기초연구의 유용한 방법론인 난포체외성숙 모델 효율성과 활용성을 크게 향상 시켰다”며 연구 의의를 밝혔다. 이어 “이번 실험에 사용한 연구 모델은 일종의 인공 난소 또는 배란 모델로 활용 가능하다. 후속 연구를 통해 난임 여성 30% 정도가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 ‘조직공학-재생의학저널(Journal of Tissue Engineering and Regenerative Medicine)’ 최근호에 게재됐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