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과 비정상의 사이 ‘정상의 가면 광기의 분출’(噴出)
인간의 광기는 왜 분출되는가? 내면을 뚫고 분출되는 뒤틀린 광기는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의 화기(火氣)로 전이된다. 싸이코패스 범죄의 미친 광기의 화염이 세계적으로 무방비 상태로 공격당하고 있다. 도덕과 윤리를 넘어선 광기다. 잔혹성과 사악함으로 테러·공포·살인으로 돌진하는 광기의 현상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모호하다. 광기의 안전핀을 제어 할 수 없는 비이성적 인간 사이에서는 불특정 다수가 화염과 미친 광기의 분화구를 마주 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 허비 클렉클리(hervey cleckley)는 ‘광기’는 정상의 가면(masks of sanity)을 쓰고 타인과 감정이입을 전혀 하지 못하는 인간 성향에서 기인된다고 진단했다.
서지혜 연출의 제39회 서울연극제 공식 참가작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 (2018.5.4~5.13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 등장하는 인물의 유형들이 미친 광기의 화염으로 폭발하거나 싸이코패스 처럼 잔혹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인간들은 아니라는 점은 안심 할 필요가 있다. 일상을 파고든 인간들의 광기현상에 대한 연극이다. 현대사회는 과도한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채 왜 광기의 병으로 앓고 있는가? 물음을 요구한다. 에피소드로 파편화 되어 있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정상과 비정상 경계에 서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공감의 오류, 소통, 교감, 차이, 바라보기 등 상호 타자를 바라보는 어긋남에서 형성되는 단절된 인간의 내면은 상실·고독·불안·우울 등으로 나타나며, 불안전한 내면은 뒤틀린 욕망의 광기를 품어낸다.
공통점은 사랑의 결핍, 통제된 내면과 고독, 타인과의 단절 등으로 서로 바라보고 마주보는 부재됨을 들어내며 인간체온이 공유 되지 못한 채 광기의 병으로 앓아가고 있는 불안한 인간을 마주한다. 이들의 결핍과 손상된 내면을 치유 할 수 있는 것은 시선과 교감, 소통, 진정한 사랑의 혈류가 ‘나’와 ‘타자’의 동일한 체온으로 흘러 들어갔을 때 극에 등장하는 어머니(전국향 분)가 ‘체첸’으로 향하는 채혈에 집착처럼 누군가를 구원해줄 수 있는 체온과 혈액은 광기가 자라나는 인간 세포를 포용할 수 있다.
작가 빼뜨르 젤란카는 국내무대에서 처음 소개되는 작가로 체코프라하 출생으로 연극·연출·영화감독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면서 체코현대연극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가 쓴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 원작은 찰스 부코스키 (1920~1994) 소설《발기, 사정, 노출, 그리고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을 각색해 2001년에 초연되면서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원작자 부코스키는 미국 현대문학의 영원한 아웃사이더다. 일생은 술과 섹스에 집착했고, 부르주아 향한 시선과 미국거대자본주의를 바라보는 냉소적 시각은 그의 키워드다. 소설을 끌고 가는 것은 섹스 이야기다. 그러나 희곡으로 옮긴 빼뜨르 젤란카는 인간의 내면에서 품어져 나오는 광기와 내면의 욕망, 불안전한 인간의 일상을 그려내고 서지혜 연출은 극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불안전한 광기에 손상된 내면을 공감·시선·차이·바라보기를 통해 치유를 시도하며 일상을 파고든 ‘광기현상’에 화약을 장전 한다.
광기의 욕망 ‘일상을 살아가는 인물들’
작품에는 온전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 빼뜨르(남동진 분)을 제외하면 불완전한 인물들로 채워진다. 40대 미혼 남 빼뜨르는 여자 친구 야나(김지성 분)과 헤어지게 되고, 야나는 빼뜨르 친구인 알레슈(지남혁 분)과 사귀게 된다. 야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미신을 믿고 머리카락을 잘라 소장을 하면 돌아온다고 믿는다. 빼뜨르가 잘라온 것은 알레슈 고모 머리카락을 실수로 자르는 바람에 신문에 사과 광고까지 내게 된다. 야나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모우카(신문서 분)은 머리카락을 자르는 주술 같은 방법 말고 다른 제안을 한다. 빼뜨르를 우체국 택배상자에 넣고 야나에게 소포로 붙이면 그녀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거라는 엉뚱한 발상을 한다.
이러한 빼뜨르는 엄마의 보이지 않는 내면의 통제 속에 살아가며 가족애의 결핍성을 들어낸다. 엄마(전국향 분)는 40살이 된 아들이 혼자 물건과 신발도 살줄도 모르는 아이로 생각하고, 지진으로 그루지아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 관련 기사와 뉴스를 스크랩해 아들에게 지속적으로 보낸다. 또한, 자신의 혈액을 채혈 해 체첸으로 보내는 것에 집착한다. 40년을 함께 산 아버지(김귀선 분)와도 사랑의 결핍, 소통과 교감의 부재를 드러내고 아들과도 소통과 교감이 고립되어 있다. 야나도 빼뜨르와 헤어진 뒤 상실과 공허함을 밤중에 동네 공중전화박스로 전화를 걸어 낮선 남자를 몇 번씩 갈아 치울 정도로 도발적이고 자유분방한 연애관을 드러내는 불안함을 들어낸다.
빼뜨르의 절친 모우카 날파리(신문성 분)은 세면대에 도발적인 여성을 상징하는 도구를 설치해놓고 변태적인 자위로 일탈적인 행동을 반복하며 진공청소기를 성적으로 상상하는 변태적인 행위를 즐기는 환자다. 빼뜨르 이웃집에서 동거를 하며 살아가는 작곡가 이르지(최무인 분)와 애인 알리째(임정은 분)은 성도착증 환자다. 그들의 은밀한 행위를 누군가가 현장에서 정사 장면을 바라봐 주었을 때 성적 욕망을 채울 수 있다. 빼뜨르는 우연한 기회에 이들 제안으로 은밀한 행위를 바라보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고, 공교롭게도 아버지도 이들의 성도착증적 변태행위를 아들과 동일한 지켜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버지는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지속적인 내전과 국가의 균열로 독립(1993)되기 전 1970년대 사회주의 공화국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국가 선전뉴스를 진행하던 아나운서였다. 알츠하이머병으로 유일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 시절 공산당 총서기와 국가뉴스를 진행하던 멘트다. 부인하고 40년 동안 같이 살면서도 ‘서로를 알지 못한다’고 느끼며 사랑의 결핍성을 느끼며 독립 전 시대로 되돌아가려는 불안한 내면과 욕망을 보인다. 맥주 뚜껑 입구를 손바닥으로 감싸 병속에 공기를 데워 공기 부피가 커지면 거품을 밀어내 터져 나오게 하는 기괴한 행위에 몰두한다.
전구가 입에 들어가는지 상상을 하는 것을 지켜본 아내(전국향 분)는 1970년대 그 시절의 남편 목소리를 남들이 기억할 것이라며 불특정 다수한테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라고 한다. 다이얼을 돌려 전화를 건 남편은 남자친구와 헤어져 상실감에 빠져 있는 조각가 실비에(남미정 분)와 우연히 통화를 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실비에의 조각상 모델을 하면서 부재된 자아의 내면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주간 뉴스를 진행하던 시절의 박재된 멘트는 실비에를 통해 아름다운 시로 낭송되어 지고 기억은 역사 속을 지나온 시간이 아니라 그 시절로 돌아가야 할 시대가 된다.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빼뜨르를 중심으로 친구, 부모, 이웃집, 애인, 여인 등 일상에서 마주 할 수 있는 인물들이 등장해 그들의 일상적인 광기를 마주한다. 이들이 벌이는 일탈은 저질적이라든가, 눈을 돌릴 만한 잔혹성과 공포도 없다. 공감할 수 있는 인간들이다. 혹은 “동일한 내면의 욕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변태적인 성적 욕망을 채우는 인간, 성도착증환자, 동성애자(발레 극중극 장면에서 관객), 사랑의 결핍을 느끼는 사람, 과거 기억에 멈추어 버린 인간, 고독과 우울 그리고 상실감에 빠져 있는 사람, 집착을 드러내는 인간, 무작위로 남자를 20차례 만나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는 인간 등 정상인과 비정상의 경계에 선 인간들이다.
서지혜 연출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일상을 파고든 광기의 대한 애기다. 에피소드로 파편화 되어 있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정상이라는 착각과 오류로 타자의 내면을 통제하고 있으며, 고립된 욕망과 병으로 광기를 품어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뜨거운 인간의 혈류가 타인의 가슴으로 전달되지 못한 채 사랑의 결핍, 불안, 균열, 통제, 교감의 부재된 신호를 보내며 현대사회에서 마음의 병으로 앓아가고 있는 불안한 인간을 마주한다.
광기와 무대사이의 에피소드
아르코소극장 무대는 불규칙하면서도 정돈된 무대를 배열하고 있다.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서지혜 연출의 공간 활용과 장면 배치가 눈에 뛰는데, 에피소드가 독립 된 배열구조가 아니라 효과적인 공간 활용과 전개를 통해 주제를 효율적으로 관통해 하나로 포개 놓는 섬세함을 보인다. 무대 좌, 우로는 누군가의 시선을 기다리는 신문더미가 겹으로 쌓아져 무대 틈을 채우고 있다. 좌측은 철제 사다리와 공중전화 박스, 그리고 진열대가 보인다. 침대가 놓여 있는 중앙은 일상의 광기가 꿈틀대고 변화되는 공간(빼뜨르와 모우카 집, 이웃집 남녀가 벌이는 성도착증 풍경, 조각가 실비에의 시낭송 및 전시회)등의 풍경들이 펼쳐진다. 우측은 빼뜨르 부모가 사는 집으로 활용된다. 그리고 무대 정면 뒤는 무대를 올려(실비에 집, 엘리베이터, 병원, 거리, 발레공연장) 등으로 전환된다.
일상의 광기가 삶에서 분출되고 균열되는 일상 삶의 무대를 공간 분할과 장면 배열을 통해 이야기를 응집력 있고 묶고 광기를 응축한다. 간이 무대 좌·우를 버티칼 블라인드로 양식화해 마치 인간의 내면이 폐쇄되고, 분화되는 욕망의 꿈틀거림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를 형성시킨다. 누군가의 시선으로부터 차단된 채 살아가는 이들을 응시하는 시선을 보내고 있는 효과를 낸다. 첫날 공연은 인터미션을 포함해(15분) 2시간 40분이 조금 넘는 공연이 걸렸는데, 속도감 있는 장면 전개와 배우들이 품어내는 광기의 열기가 작품을 안정적으로 몰아갔다. 연출의 무대구성력과 무대배치, 에피소드를 열고 닫는 장면전환 등이 효과적인 광선을 만들어 냈고, 광기가 흐르는 내면을 시각적으로 들어날 수 있도록 장면을 역동적으로 비추었다.
이들이 살아가는 광기의 일상은 유별나지 않다. 싸이코패스의 전형적인 사건이 등장하지도, 광기의 화염을 쏟아내는 것도 없다. 폭력적이거나 사악함으로 타인을 타격하는 악랄함을 들어내지도 않는다. 푸코에게 동성애는 배려를 동시에 수행하는 행위이며, 변태적안 성욕이 아리라 자율성을 가진 두 남성들이 자신을 제어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플라톤은 광기를 “인간의 결함에 기인한 질명 및 일상과 관습으로부터 영혼이 해방되는 상태”며 미셀푸코는 “인간이 분출되어야 할 진실 된 내면의 욕망이 타자와 개인, 사회로 표출되지 못하고 단절과 고립 되어 욕망이 통제 된 상태 ”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극중 인물들은 일상에서 불안함으로 일탈적인 광기를 보이며 살아가는 인간들이다. 손상된 내면을 마주하고, 바라보고, 시선과 공감을 주는 것이 치료제다. 내면의 불안전하고 상실된 공허를 광기의 욕망으로 전진하는 이들에게 타자의 시선, 사랑, 공감과 교감, 차이의 이해가 필요하다.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 연극리뷰는 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2(일상을 걷는 광기의 욕망) 로 이어집니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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