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에 관계 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이틀 만에 20만명 서명을 얻은 데 이어 나흘째인 14일 30만명의 동의를 얻었다. 홍대 누드 크로키 모델 불법촬영(몰카) 가해자가 사건 발생 11일 만에 구속되면서 이를 바라보는 여성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분출된 모양새다.
지난 11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여성도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이 청원은 14일 오후 5시 현재 31만여명의 서명을 받았다.
청원인은 홍대 누드 크로키 모델 몰카 사건처럼 그동안 숱하게 발생한 여성 대상 몰카 사건들도 신속히, 엄정하게 수사해달라고 요청했다. 몰카 피해자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이 국가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청원인은 이 순간에도 여성을 대상으로 한 몰카가 단순 인터넷 게시물로 소비되고 있지만, 신고를 해도 돌아오는 건 2차 가해라고 지적했다. 몰카 가해자가 집행유예나 무죄 판결을 받은 사례도 여러 건 첨부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고 피해자가 남성이기 때문에 재빠른 수사를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서울서부지법은 홍대 회화과 누드크로키 수업에서 남성 모델의 나체를 찍어 유출한 혐의를 받는 안모(25·여)씨에 대해 “증거인멸과 도망 염려가 있다”며 12일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에 문제의 사진이 올라온 지 11일 만이다. 모자와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경찰서를 빠져나오는 안씨의 모습은 13일 여러 포털사이트 메인을 장식했다.
안씨의 구속은 일상적으로 ‘몰카 공포’를 감내해 온 여성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피해자가 남성이라서 신속한 수사가 이루어졌다”는 여론이 확산됐고, 사법 불평등 논란으로 번졌다. 그동안 누적된 수사 당국과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터져나온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몰카 범죄는 2012년 2400건, 2014년 6623건, 2016년 5185건, 지난해 7월 3286건으로 지난 5년간 연평균 21.2%가 증가했다. 이에 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이 몰카 범죄에 대한 특별 대책을 당부했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와 웹하드 등에선 여전히 몰카 추정 영상과 사진이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고등학교 여자 기숙사 내부를 몰래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영상이 유포되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건물 밖에서 창문을 통해 촬영한 이 몰카 영상의 피해자는 최소 수십명으로 추정된다.
한 네티즌은 “산부인과 내원환자 137명을 대상으로 몰카 찍고 심지어 이미 동일범죄 처벌받은 적도 있는 의사의 경우 징역 1년에 신상공개도 안 했다. 동료 여자 수영선수들 몰카를 찍은 남자 수영선수는 5명 모두 무죄를 받았다”며 “이 중 포토라인에 선 사람이 있느냐”고 지적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한국 성인 사이트만 뒤져도 몰카 유포자를 하루에 수십명은 검거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할 수 있으면서 왜 방관했느냐”고 분노했다.
한편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은 14일 기자 간담회에서 “성별에 따라 수사 속도에 차이가 있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이번 사건은 범행 장소가 미대 교실이고, (수업에) 참여했던 사람으로 (수사 대상이) 특정됐다”면서 “피의자 성별에 따라 수사 속도를 늦추거나 빨리하면서, 공정하지 못 하게 (수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