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에서 의식을 잃고 중앙분리대와 충돌해 계속 움직이고 있는 승용차 운전자를 본 40대 크레인기사가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고 차량을 정지시킨 뒤 죽어가는 시민을 살렸다.
한영탁(46·크레인기사·인천 연수구)씨는 14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12일 오전 11시30분쯤 인천에서 평택으로 가던 중 1차로로 직진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정체된 차에 가려 보이지 않았으나 사고를 보고도 10여대의 차량이 현장을 피해가고 있었다”고 당시 긴박한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112를 신고한 사람은 총 3명이었다. 첫 번째 신고는 오전 11시32분쯤이었다. 신고자는 “차가 1차선에서 중앙분리대를 들이박고 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두 번째 신고는 같은 날 오전 11시35분 한씨가 한 것이었다. 한씨는 “운전하다 쓰러졌다. 지금 위험한 것 같아서 일부러 사고를 냈다”는 메시지였다.
한씨와 같은 시간에 또다른 112신고자는 “내가 봤는데 운전자가 쓰러져 있다”고 경찰에 알렸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12분 뒤였다.
한씨는 “크랙션을 울려도 운전자가 반응이 없어 심전지 상태가 계속되면 사망할 수도 있다는 기사가 떠올라 타고 있던 현대차 투스카니 승용차 뒷부분을 이용해 의식을 잃은 운전자가 조수석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승용차를 멈추게 했다.
한씨는 다른 차량 운전자들을 향해 다급하게 ‘망치’ ‘망치’라고 외쳤다. 누군가가 한씨의 손에 ‘망치’를 건넸다. 한씨는 사고 차량의 운전석은 열수가 없어 조수석 뒷문을 깬 뒤 이어 조수석 유리를 깨고서도 쓰러져 있는 운전자를 끌어낼 수 없게 되자 의식이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한씨는 “선생님 괜찮으냐”고 물었다. 사고 운전자는 그때 눈을 떴다. 하지만 의식이 없어 눈이 풀려 있었다. 한씨는 사고 운전자가 숨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주변에 119를 불러달라고 소리쳤다.
한씨는 “의식이 희미한 사고운전자를 주물러 주면서 계속 말을 시켰다”고 말했다.
한씨는 고3, 고1, 초등 6년인 세 자녀를 둔 가장이었다.
의인(義人) 한영탁씨에 대해 인천경찰청은 이날 오전 9시 간부회의에서 지방청장 감사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인천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에 따르면 12일 오전 11시 30분쯤 제2서해안고속도로 하행선 조암IC 전방 3㎞ 지점에서 코란도 스포츠 승용차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분리대를 계속 들이받으면서 1.5㎞를 더 전진하다 한씨의 승용차가 들이받은 뒤에서야 멈춰섰다.
코란도 승용차 운전자 A씨(54)가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달리는 차량의 운전석에 쓰러져 죽음의 문턱에서 의인 한씨를 만나 목숨을 건진 순간이었다. A씨는 의식을 회복한 뒤 사고 하루뒤인 13일 한씨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