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인식을 같이 했다. 한때 북한 지도부 참수작전을 지휘하며 초강경 대북 압박을 전개했던 ‘매파(강경파)’ 폼페이오 장관은 강 장관의 옆에서 부드러운 표정으로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 임했다. 북·미 정상회담의 긍정적 성과를 기대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신호’로 평가된다. 그야말로 ‘외교 한류’의 온풍이 불고 있다.
강 장관은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폼페이오 장관,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을 만난 뒤 언론사 특파원 간담회를 열고 “북·미 정상회담이 완전한 비핵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을 달성하기 위해 놓쳐서는 안 될 역사적 기회라는 점에 한·미가 인식을 같이 하고 긴밀히 공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양국 간 전략적 소통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는 판단으로 이번 워싱턴 방문을 추진했다”며 “폼페이오 장관으로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면담 등 최근 방북 결과를 포함해 북·미 사이에서 진행된 논의 과정 전반에 대해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강 장관과 폼페이오 장관은 워싱턴 D.C 국무부 청사에서 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흡족한 표정으로 강 장관과 단상에 나란히 섰다. 사이사이에 미소를 짓기도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비핵화가 진전을 보이면 북한의 경제 발전에 지원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폼페이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한 지난해 1월부터 올 3월까지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매파’ 인사. 국무장관 임명 이전인 지난 3월 31일부터 지난달 1일까지 이틀간 북한 평양으로 극비 방문해 김 위원장을 만나고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순조롭게 진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은 예정대로 성사돼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마주앉아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주요 현안들을 논의한다. 미국과 북한 정상의 회담만 해도 사상 처음이어서 역사적이다. 김 위원장은 앞서 지난달 2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북한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우리 영토를 밟았다. 그 사이 두 차례나 방중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의 이런 ‘광폭 행보’는 한국의 ‘운전사’ 역할이 성공적으로 진행된 결과로 볼 수 있다. 미국 행정부와 집권 공화당의 ‘매파’ 인사들은 물론, 강경한 대북정책만 고집했던 일본도 전략을 수정해 한국 주도의 동아시아 평화 기류에 합류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11일 후지TV에 출연해 “김 위원장이 미국·한국(정상과의 만남)만 좋은 게 아니라는 판단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재팬 패싱’ 우려 속에서 김 위원장에게 직접 손을 내밀어 만남을 요구한 셈이다. 아베 총리는 유연하지 못한 대북정책으로 한때 일본 안에서 ‘모기장 밖으로 밀려난 모기’로 묘사되기도 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