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대 “성관계 동영상, 몰카 아니었다”…단톡방 유출 처벌은?

입력 2018-05-12 11:27 수정 2018-05-12 11:40

한국항공대 단톡방으로 유출된 성관계 동영상은 일방적으로 촬영된 이른바 ‘몰래카메라(몰카)’가 아니었던 것으로 학내 자체 조사에서 확인됐다. 다만 촬영자 간 의사와 무관하게 배포자의 책임을 묻는 성폭력범죄 특례법에 따라 동영상을 학과 단톡방에 옮긴 행위에 대해서는 사법처리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내사에 착수했다.

항공대 관계자는 11일 “영상 속 남녀를 모두 만나 자체 조사를 실시했다. 남성은 재학생이고 여성은 아니었다. 양측에게서 ‘촬영에 동의했다’는 말을 들었다. 남성은 ‘실수로 단톡방에 옮겼다’고 주장했다”며 “남성에 대한 조사를 마치면 다음 주 중으로 지도위원회를 열어 징계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이 영상은 남녀 간 동의 없이 촬영된 ‘몰카’, 또는 상대방에 대한 복수심으로 배포된 ‘리벤지 포르노’일 가능성이 학생들 사이에서 제기됐다. 학교 측은 자체 조사에서 성관계의 강제성, 촬영의 일방성, 배포의 고의성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경찰은 사건을 인지하고 내사에 들어갔다. 경기도 고양경찰서 관계자는 “여성청소년과에서 내사가 시작됐다. 피해 상황을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사건이 고발된 곳은 항공대 ‘대나무숲’ 페이스북 계정. 익명 발언대 격의 게시판이다. 사건의 전말은 ‘37262번 송골매’라는 필명을 사용한 재학생이 지난 9일 오전 3시3분 작성한 글을 통해 드러났다. 이 계정에선 글을 싣는 순서로 필명을 정해 ‘OO번 송골매’라는 식의 말머리를 붙인다. 송골매는 항공대의 상징으로, 이 계정에서는 학생 스스로를 가리킨다.

‘37262번 송골매’는 21초 분량의 성관계 동영상이 지난 8일 오후 8시29분 항공운항학과 재학생 276명이 모인 모바일 메신저 단체 대화방, 일명 단톡방에 게재됐고 곧 ‘죄송합니다. 실수로 사적인 동영상이 올라갔습니다. 죄송합니다. 저의 실수입니다’라는 메시지가 올라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성이 여성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영상을 촬영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남성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촬영하는 듯 카메라 쪽으로 여성의 얼굴을 돌리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며 “여성은 성관계를 즐기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영상의 마지막 부분에서 카메라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고 주장했다.

이 글은 현재 삭제됐다. ‘37261번 송골매’와 ‘37263번 송골매’라는 필명을 사용한 글 사이는 공백 상태다. 익명 계정의 특성상 누가 작성했고 삭제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37262번 송골매’의 글은 이미 116명의 ‘좋아요(배포 개념)’를 받은 상태에서 캡처돼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떠돌았다.

항공대 성관계 동영상 유출 사건은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홍대 회화과 학생의 남성 누드모델 ‘도촬’ 논란과 맞물려 더 큰 공분을 일으켰다. 홍대의 경우 남성 누드모델을 촬영한 학생을 찾는 과정에서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자체 조사 선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한 학교 측의 안일한 대응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학내에서는 남성에 대한 처벌은 물론, 학교나 학과 차원의 은폐 시도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 재학생은 페이스북에 ‘37262번 송골매’의 글 전문 화면을 배포하고 “글이 삭제됐다는 것은 결국 사건을 묻으려는 시도로 볼 수밖에 없다. 300여명이 있는 단톡방에 올린 것은 분명한 범죄”라고 말했다.

항공대 관계자는 “해당 학과 단톡방에 동영상 재배포 행위는 처벌 대상이라는 사실을 고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배포 속도가 빠른 모바일 메신저의 특성상 동영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퍼졌을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인격살인형’ 성범죄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음란 동영상의 배포는 행위의 의도, 당사자 간 합의 여부와 무관하게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음란물 촬영에 대한 처벌 규정을 명시한 성폭력범죄 특례법 14조 2항은 “촬영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아도 사후에 공공연히 전시·상영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