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중은 2년6개월 만에 재개된 정상회의에서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고 공조를 약속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고조된 평화 분위기를 증진하면서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0%를 차지하는 3국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리커창 중국 총리는 ‘판문점 선언’을 지지했고, 문 대통령은 감사의 인사로 화답했다.
각국에 다르게 놓인 이해관계도 있었다. 한·일·중 정상은 9일 일본 도쿄 영빈관에서 북핵문제 해결을 통한 항구적 평화 정착, 경제 협력으로 추구할 공동의 이익을 선언한 공동 발표에 각국의 현안도 하나씩 추가했다. 이렇게 다른 이해관계를 서로 공감하면서 더 완벽한 공조의 틀을 구축할 수 있었다. 공동 발표는 아베 총리, 리 총리, 문 대통령 순으로 진행됐다.
납북 일본인
회의의 개최국 정상 자격으로 가장 먼저 발언한 아베 총리는 ‘납북 일본인’을 별도로 언급했다. 아베 총리는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지난달 27일을 전후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찾아가고 문 대통령과 전화통화로 대화하면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북한의 인권 문제와 맞물린 만큼 한국, 중국과 공조가 필요한 사안이다.
아베 총리는 공동 발표에서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기 위해 (한국·중국) 두 정상에게 협조를 요청했고, 일본의 입장에 대한 이해를 얻었다”며 “납치, 핵, 미사일과 같은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고 북한이 올바른 길로 간다면 북·일 평양선언(2002년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의 선언문)에 의거해 불행한 과제를 청산하고 국교정상화를 지향하겠다”고 말했다.
미·중 무역전쟁
리 총리는 한·일·중 정상회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마련된 평화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3국이 협력하고, 동아시아가 세계 평화발전을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중국은 이번 회의 참가국 중 유일하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다.
리 총리는 그러면서 한·일·중의 ‘경제적 협력자’ 관계를 반복적으로 언급해 강조했다. 그는 “한·중·일이 매우 중요한 ‘지역경제체’로서 자유무역 협정을 추진하고 활발히 교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세계적으로 발생한 여러 문제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 협력을 통해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보호무역주의에는 반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일·중 이외의 국가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미·중 무역전쟁’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을 포함한 미국 대표단과 류허 국무원 부총리를 앞세운 중국 협상단은 지난 3일 베이징에서 ‘무역담판’을 벌였지만 양국의 입장차만 확인했다. 류허 부총리는 다음주 중으로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해 ‘무역담판’ 2라운드를 벌인다.
미세먼지
문 대통령은 이날 집권 1년차를 맞았다. 남북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뤄내 북·미 정상회담의 활로까지 열어둔 문 대통령에게 한·일·중 정상회의는 다소 느긋한 자리로 볼 수 있다. 집권하고 처음으로 방문한 일본에서 ‘판문점 선언’에 대한 중국, 일본의 지지를 얻어내 사실상의 목적을 달성했다. 문 대통령은 공동 발표에서 일·중 정상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문 대통령은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을 위한 3국 협력의 목표를 민생에서 찾았다. 그는 “국민이 그 성과와 혜택을 체감하고 누리는데 궁극적 목표가 있다”며 “미세먼지, 감염병, 만성질환처럼 국민의 삶을 위협하는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북핵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쥔 ‘동아시아의 운전자’로 주변국과 공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낸 셈이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