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봅시다] 공권력 행사 기준 모호… “광주 폭행, 경찰 손발이 묶였다”

입력 2018-05-09 06:25

진압과정서 인명피해나면 해당 경찰이 오롯이 책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총기사용 허용 청원 빗발

백남기 사건·용산참사처럼 과잉진압·인권침해 우려도

지난달 30일 광주에서 발생한 집단폭행 사건으로 경찰의 공권력 행사가 또 논란이 되고 있다. 경찰이 모호한 매뉴얼에 속박돼 강력범죄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반면 공권력을 남용해온 경찰에게 강력한 대처를 주문하기 어렵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8일 “주취자가 흉기를 사용하는 등 과격한 폭력을 행할 시 경찰의 총기사용을 허용하라”는 등의 청원이 다수 게재됐다. 택시 승차를 두고 시비를 벌이다 집단폭행이 이뤄졌는데도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제대로 진압하지 못한 이유가 경찰의 공권력 행사가 너무 위축됐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경찰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피해를 키웠다”는 비난도 거세다. 당시 가해자들이 경찰들의 손을 뿌리치고 피해자를 폭행하는 장면이 담겨 있는 CCTV 영상이 온라인으로 퍼지면서 경찰이 오히려 가해자들이 무서워 주어진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앞서 김순호 광주 광산경찰서장은 지난 4일 “당시 출동한 경찰은 집단폭력 사건 신고 시 조치 매뉴얼에 따라 신속한 출동, 상호 분리, 부상자 후송, 체포 등을 순차적으로 진행했다”고 공식 해명했다. 김 서장에 따르면 순찰차 2대(경찰관 4명)가 신고 후 4분 만에 도착했으며 경찰 4명은 가해자 4명의 팔을 꺾고 넘어뜨려 제지했다. 또 인접 지역의 경찰관이 추가로 도착해 가해자 7명 전원에게 수갑을 채워 체포했고, 저항하는 가해자들에게는 테이저건을 사용했다.

경찰 안팎에서는 진압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인명피해가 생길 경우 해당 경찰이 오롯이 책임을 져야 하는 관행 탓에 적극 진압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8월 서울 은평경찰서 연신내지구대에서는 한 순경이 취객을 제압하다가 상처를 입혀 특가법상 독직폭행 혐의로 기소됐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10조에는 경찰이 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그 기준은 모호하다. 총기사용이 허가되는 경우는 정당방위, 긴급피난, 징역 3년 이상의 실형을 받을 수 있는 피의자가 저항·도주 시, 위험 물건 소지 범인을 체포할 때 등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정당방위의 경우가 무엇인지만 따져도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상황과 때에 맞는 더욱 세세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개혁위 인권보호분과 관계자는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이나 용산참사처럼 경찰이 공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가슴 아픈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은 인권이라는 가치가 경찰의 직무 수행과정에서 작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이번 사건만 보고 경찰의 공권력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고 말했다.

광주 폭행사건 피해자 A씨의 변호인은 8일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죽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도 범행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가해자들에게 살인미수 혐의 적용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