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情)을 파는 마을 기업 ‘무릉외갓집’

입력 2018-05-08 19:53 수정 2018-05-08 20:54
김윤우 무릉외갓집 대표가 지난 3일 제주 서귀포시 무릉외갓집 사무실에서 농부들을 소개하고 있다. 김유나 기자

김윤우 무릉외갓집 대표는 ‘공동체의 힘’을 믿는 사람이다. 무릉외갓집은 행정안전부와 제주특별자치도 지원을 받아 마을 이웃들과 함께 농산물을 생산·판매하고 수익을 나누는 마을기업이다. 김 대표는 지난 3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무릉외갓집은 ‘외갓집’이라는 단어처럼 푸짐한 정을 얹어서 준다는 의미”라며 “이웃들과 함께 꾸려나가면서 많은 교류를 하게 됐고 공동체를 복원한다는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릉외갓집은 주 1회 또는 월 1회 과일과 야채를 담아 박스를 배송하는 ‘꾸러미’를 구성해서 판매한다. 월간꾸러미의 경우 1년치 가격이 43만8000원이다. 한 달로 나누어 계산하면 신선한 제주 지역 농산물을 집 앞까지 받아본다는 것이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지만 선불 시스템은 소비자들에게 부담일 수 있다. 김 대표는 “농산물 특성상 수요가 예측 가능해야 한다”며 “고객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더 안정적인 농산물 생산을 위해 선입금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릉외갓집이 보내는 주1회 꾸러미 구성 모습. 김유나 기자

무릉외갓집과 인연을 맺은 조합원은 46명이다. 이들이 생산하는 품종은 과일·야채 등 50여개 품목이다. 조합원 1명이 주로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에 무릉외갓집에 딸린 식구들은 100여명을 훌쩍 넘는다. 매출은 연간 7억원대로 마을기업 중 매출 상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4명 직원 월급을 지급하고 마을 발전기금을 내고 나면 넉넉하진 않은 수준이다. 고정 회원수를 확보하고 단품 판매를 늘려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것이 마을기업들의 공통된 과제로 남아있다.

넉넉하진 않지만 무릉외갓집을 버티게 하는 것은 이웃이 함께 참여하는 마을기업 정체성에 있다. 마을기업을 운영하는 이유는 수익이 전부가 아니라 공동체 정을 회복하고 신선한 농산물을 소비자들에게 공급한다는 자부심때문에서 였다. 2010년 경제위기 여파로 회원수가 급감했을 때도 수익보다 고객과의 약속을 먼저 떠올렸다. 당시 김성종 농부가 “그만두면 사기꾼 밖에 되지 않는다. 선입금을 받고 힘들어 못한다는 것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것”이라며 이웃 농부들을 다독였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무릉외갓집 덕분에 좌기동, 인향동, 평지동 등 각각의 마을로 떨어져있던 이웃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장점이다. 무릉외갓집이 지금처럼 자리잡을 수 있었던 데는 1사1촌에 적극 참여한 벤타코리아의 공도 크다. 벤타코리아는 무릉외갓집에 박스 제작 노하우부터 회원 확보를 위한 거래처 안내 등 초기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줬다.
꾸러미 구성을 상의하는 김윤우 대표(오른쪽) 모습. 김유나 기자

매주 셋째주 화요일에 이뤄지는 작업을 위해 무릉외갓집은 주민들로 북적인다. 마을 경로당에서 시간을 보내던 주민들은 꾸러미 구성을 돕고 일당을 받는다. 크게 힘이 들지 않는 일이지만 용돈 벌이를 할 수 있어 주민들의 호응이 뜨겁다. 또 정기적으로 문화 공연이나 영화 상영을 개최해 마을 사랑방으로도 변신한다. 김 대표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무미건조했던 농사일을 하던 주민들이 이제는 무릉외갓집에 모여서 일상을 이야기하고 문화 공연도 감상하게 됐다”며 “마을기업을 통해 ‘마을’이 회복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