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 세 모녀’와 ‘구미 부자’… 벼랑 끝 내몬 관계적 빈곤

입력 2018-05-08 18:11
기사 내용과 무관. 게티이미지뱅크

엄마는 직업을 잃었다. 만성 질환에 시달리던 큰딸은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했다. 조건 미달로 복지 혜택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에 살던 60대 노모와 30대 두 딸은 지하 월세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현금 70만원과 함께 남긴 유언이었다.

지난달 7일 충북 증평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엄마와 네 살배기 딸이 관리사무소 직원의 신고로 숨진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엄마는 남편과 사별 후 극심한 심적 고통을 겪었고, 딸을 먼저 살해한 뒤 자신의 목숨까지 끊었다. 엄마 몸에는 흉기로 자해를 시도한 흔적 6개가 있었다. 이들의 죽음은 무려 4개월이 지나서야 ‘체납된 관리비’ 덕분에 세상에 알려졌다.

◆병사한 아빠…그리고 아사한 아들

경북 구미에서 비슷한 사건이 지난 3일 또 발생했다. 28세 남성 A씨가 16개월 된 아들과 원룸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어린이날을 고작 이틀 앞둔 시점이었다. “세입자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부동산중개사의 신고로 경찰이 원룸에 문을 열고 들어가 시신을 발견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 몸은 비정상적으로 야위어 있었다. 경찰은 A씨가 병으로 숨지고 아들은 아빠 곁에서 굶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원룸에서는 음식을 조리한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A씨는 수개월 전 사실혼 관계였던 아내와 헤어진 후 무직 상태로 아이를 혼자 돌봤다. 경찰은 “A씨가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확한 사망 원인은 부검을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은 소리 없이 떠났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자살한 ‘송파 세 모녀’, 신변비관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증평 모녀’, 무기력하게 숨을 거둔 ‘구미 부자’, 이 사건의 공통점은 누구도 그들을 돌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고통은 죽음 뒤에야 알려졌다. 부실한 복지 대책과 무너진 공동체 의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뒤늦게 터져 나왔다.

송파 세 모녀가 9년간 살았던 집의 주인 임모씨는 당시 “모녀가 조용한 편이라 교류가 드물었고 집에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고 밝혔다. 어머니인 박모씨의 외삼촌만 가끔 전화를 한 정도였다. 가족은 정부의 도움도 전혀 받지 못했다. 숨지기 3년 전 관공서에 복지 지원을 요청했지만 대상 조건을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재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동안 가족은 박씨가 식당에서 일한 돈과 둘째 딸의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유지해야 했다. 박씨가 팔을 다쳐 실직하자 그마저도 어려워졌다.

‘증평 엄마’ 정모씨의 경우 금전적 고통은 없었지만 남편과 어머니의 연이은 죽음으로 생긴 마음의 상처 때문에 괴로워했다. 정씨의 상처는 자신의 몸을 끔찍하게 훼손하고 딸에게 극약을 먹일 정도로 심각했다. 여동생은 그런 언니의 죽음을 알고도 범인으로 몰릴 것이 두려워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일가족의 비극을 막지 못한 것은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어떤 아픈 사연을 갖고 있는지 모르고 살아가는 상황에서 비극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반복되는 비극적 죽음…지역 사회가 나서야

송파 세 모녀의 죽음이 알려졌을 당시 사회 곳곳에서 추모 물결이 일었다. 시민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에 애도하는 글을 올렸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재구축해야 한다”며 성명을 발표했다. 정치권도 이에 동참했다. ‘사회적 타살’이라는 지적까지 제기되며 국민적 관심이 쏠렸지만 비슷한 사건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역 사회의 관심과 돌봄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송다영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8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이 사건들은 결국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이웃 간 소통이 단절돼 발생한 것”이라며 “경제적 빈곤도 문제지만 관계적 빈곤도 큰 문제”라고 밝혔다. 이어 “사회적 자본을 회복하고 지역사회 공동체가 형성돼야 한다. 굉장히 밀집된 한국 사회에서 이웃이 굶고 있는 것도 모르는 건 심각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긴급복지지원제도 역시 보완돼야 할 부분 중 하나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1월 지원 대상과 범위를 확대했지만 이번 구미 부자 사건처럼 구제받지 못하는 사례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사회보장정보원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에 따른 지원현황’에 따르면 2015년 12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고위험 대상자가 49만8486명이었다. 이 중 22.1%인 11만613명만 실제로 지원받았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