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 원룸에서 20대 아빠와 2살짜리 아들이 나란히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은 긴급복지 지원제도에 여전히 큰 구멍이 뚫린 우리사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정부는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망 등을 계기로 긴급지원 대상을 선정할 때 지자체장의 재량을 확대하고 생계유지의 안전망을 넓혀주도록 긴급복지지원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구미에서 젊은 부자가 생계를 잇지 못하고 또다시 숨져 법 개정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와 지자체는 위기가구를 찾아내기 위한 행정체계를 점검하고 신고의무를 확대했지만 불행이 닥친 후에야 절박한 사연이 전해지는 안타까움이 반복되고 있다.
경북 구미 봉곡동의 한 원룸에서 외롭게 살던 A(28‧무직)와 16개월 된 아들이 발견된 것은 지난 3일 오후.
“세입자가 며칠째 연락을 받지 않는다”는 부동산공인중개사와 주민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화들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좁은 방안에 젊은 아버지와 핏덩어리나 다름없는 2살짜리 아들이 함께 누운 채 숨져 있었던 것이다.
경찰은 외부인이 침입한 흔적이 없는 데다 음식물을 조리해먹은 빈 그릇 등이 없는 점으로 미뤄 병환 등으로 숨진 아빠 곁에서 생후 2년도 되지 않은 아들까지 굶어죽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A씨는 사실혼 관계이던 부인(28)과 수개월 전 헤어진 뒤 혼자 아들을 양육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들 부자가 숨진 구체적 경위를 조사 중이다.
경찰은 숨진 부자의 정확한 사인을 가리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한 뒤 인근 주택가의 CCTV와 동네주민 등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부자의 시신에서 외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며 “A씨에 비해 외관상 시신의 부패정도가 덜한 아들은 굶어 죽은 게 아닌가 짐작될 뿐”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1월 긴급복지 대상과 범위를 확대했다. 가구 세대주에게 한정하던 위기사유 대상을 세대 구성원까지 넓혔고 단전이 될 경우 1개월 후에나 지원하던 규정을 단전 즉시로 변경했다.
지자체 역시 시‧군‧구와 읍‧면‧동 주민센터 희망복지지원단을 중심으로 기존 취약계층 신청에서 탈락한 가구에 대한 모니터링과 방문상담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실직과 휴‧폐업, 노숙, 출소 등 다양한 사유로 인한 위기가정은 줄지 않는 실정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긴급복지의 문턱을 낮췄지만 안전망에 걸리지 않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본인이 긴급복지 대상자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라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는 일도 잦은 현실이다. 한 일선 경찰관은 “상당수 생계형 범죄자들은 본인을 돕기 위한 제도가 있는 줄 모르고 범죄의 수렁에 빠진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실제 정부가 ‘송파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2015년 12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8차례에 걸쳐 복지사각 지대에 놓인 고위험 대상자 49만8486명을 찾아냈지만 실제 지원을 받은 비율은 22% 수준인 11만613명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복지제도에 정보접근이 힘든 가구나 거동이 어려운 복지수요자 등의 직권조사나 제3자 신고에 의한 상시 발굴체계를 구축해야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보건복지콜센터(129) 등 현행 긴급복지 제도를 전혀 모르는 사회구성원들이 적지 않다”며 “잠재적 위기가구에 대한 맞춤형 복지와 긴급복지제도에 관한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긴급복지에 큰 구멍 여전…경북 구미 원룸에서 20대 아빠, 16개월 아들 숨진 채 발견.
입력 2018-05-08 15:04 수정 2018-05-08 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