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신문이 최근 한반도 정세에서 기정사실로 굳어져 가는 ‘재팬 패싱’을 언급하며 일본을 겨냥해 논평을 실었다. 글의 톤은 일본을 힐난하는 것이고, 그 배경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평창 행보’가 있음을 감추지 않았다. 노동신문은 아베 총리가 평창동계올림픽 리셉션장에서 했던 행동을 “잔칫상에 재 뿌리기”라고 표현했다.
노동신문은 6일 ‘행장을 차리기 전에 마음부터 고쳐 먹으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오늘날 일본의 외톨이 신세는 실로 가련타 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한국과 미국을 통해 대북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일본 정부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논평은 “일본은 왜 ‘일본소외' 다시 말하면 ’재팬'이란 단어 뒤에 ‘패싱'이라는 꼬리를 달고 다니는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북남대화 분위기가 급물살을 타게 되자 평창에 달려와 ‘북조선의 미소외교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잔칫상에 재를 뿌리다 쫓겨 갔던 사실을 까맣게 잊은 모양"이라고 했다.
이어 "정세가 돌변해 조선반도에서 훈풍이 불자 이제는 ‘평화의 사도'로 둔갑해 평양길에 무임승차하겠다고 한다. 부하들도 문전박대 받기 딱 좋게 놀고 있다. 현재 일본이 처신하는 것을 보면 시대의 흐름에 선뜻 뛰어들 자세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노동신문은 또 "일본은 미국 상전에 청탁하고 주변 대국에 구걸하며 남조선 당국에 빌붙어서라도 평양 문턱을 넘어서 보려고 권모술수를 다 쓰고 있지만 고약한 속통과 못된 버릇을 버리지 않는 한 억년이 가도 우리 땅을 밟아보지 못할 것"이라며 "마음부터 고쳐 먹으라"고 촉구했다.
◆ 日은 구애하는데… 단호한 北 “북일회담 요구 일절 응하지 말라”
비즈니스인사이더 일본판은 지난달 27일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당국이 일본의 정상회담 요구에 일절 응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결정된 지난 3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을 희망한다는 아베 신조 총리의 의향을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에 전달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에 답하지 않았다.
이 소식통은 “아베 총리가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리셉션에 참석해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북·일 평양선언’과 ‘스톡홀름 합의’ 복귀를 촉구했다”면서 “김 위원장은 일본의 사죄와 배상이 먼저란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아베 총리와 김 상임위원장이 통역의 도움을 받아 이 같은 얘기를 나눴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평창 올림픽이 열린 2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함께 2박3일 일정으로 방남했다. 아베 총리 역시 한국을 찾았고, 두 사람은 개막식에 앞서 진행된 사전 리셉션장에서 만났다. 두 사람의 대화 여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지만 아베 총리가 김 상임위원장에게 인사하는 모습을 한 매체가 포착해 공개했다. 대화 내용은 전해지지 않았었다.
아베 총리가 언급했다는 주장이 나온 평양선언은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서명한 것이다. 양국은 북일 국교정상화 협상 재개를 위해 북한의 일본인 납치사건 문제 해결과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 및 경제적 보상을 논의했다.
이후 양국은 2014년 5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일본인 납북사건 재조사에 전격 합의했다. 하지만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일본의 대북 압력 노선이 본격화되면서 흐지부지됐다.
남북 정상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중·북·미 4자 회담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여기에 일본은 포함되지 않았다. 따돌림당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아베 총리는 “그럴 일은 전혀 없다”면서 “미국과 일본은 같은 방침을 갖고 있다. 문 대통령과도 일치한 방향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 北·日과 달리 착착 진행되는 北·美… 트럼프 “회담 날짜·장소 결정됐다”
여전히 냉기류가 흐르는 북일관계와 달리 북미정상회담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에서 열린 감세 관련 행사에 참석해 “북미정상회담의 시간과 장소가 모두 결정됐다. 우리는 날짜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전날 기자들에게 회담 일정이 정해졌다고 말한 것을 재확인한 발언이었다.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는 공개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주 북미정상회담의 판문점 개최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트위터에 연달아 글을 올려 판문점이 ‘역사적 장소’임을 강조했다. 지난달 28일 밤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할 때 트럼프는 판문점 ‘평화의집’과 ‘자유의집’의 차이점 등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판문점보다 싱가포르가 유력하다는 관측이 워싱턴 외교가에서 회자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에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보자"는 특유의 말버릇과 함께 "우리는 북한과 끊임없이 접촉하고 있다. 실제로 시간과 장소를 결정했으며 모두 합의가 됐다. 곧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점은 ‘5월 말~6월 초’에서 ‘5월 중순’으로 앞당겨졌다가 다시 ‘6월’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다. 북미정상회담 전에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이 5월 22일로 확정됐다. 따라서 북미회담은 일주일쯤 뒤인 5월 마지막 주에 하거나 아니면 6월로 넘어가게 되는 상황이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