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일행은 화성행차 8일간 어떻게 먹었을까?

입력 2018-05-03 16:46 수정 2018-05-03 17:28
정조의 ‘화성행차’는 조선시대 역사에서 하나의 장관을 이룬다. 거대한 행렬 규모는 물론이고 멀고 긴 여정, 그리고 행차의 배경이 되는 아버지의 비극과 어머니에 대한 효심 등 극적인 요소가 풍부하다.

1795년 조선의 22대 왕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가 있는 화성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를 열기 위해 왕실 행렬을 이끌고 8일간 행차한다. 조선은 기록의 나라답게 이 성대한 나들이의 전 과정을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한양에서 화성으로, 화성에서 다시 한양으로 오가는 8일간 길 위에서 그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기록에 따르면 혜경궁은 8일 동안 진찬상, 수라상, 반과상, 미음상 등 60여 차례의 상을 받았다. 정조와 누이동생인 두 군주 역시 40∼50차례 상을 받았다. 정조의 명에 따라 정조와 두 군주의 상은 한 상에 일곱 그릇 정도만 차린 간소한 상을 받았지만 혜경궁의 상은 한 상에 십여 그릇 이상 차린 제대로 된 수라상이었다.

정조와 혜경궁, 수행원 등 수천 명이 새벽부터 밤까지 먹은 음식들이 ‘원행을묘정리의궤’의 ‘권4 찬품편’에 빠짐없이 적혀 있다. 조선시대 궁중음식의 진수가 거기 담겨 있는 셈이다.

이번에 출간된 ‘수라일기’(전 2권)는 ‘찬품편’을 현대인들이 읽을 수 있게 풀어쓴 책이다. ‘1권-8일간의 음식일지’에는 ‘찬품편’ 원문과 해설을 수록했고, 혜경궁의 음식상을 중심으로 정조 음식상, 수행원 밥상 등 총 25가지 상차림 사진을 실었다. ‘2권-궁중음식법’에서는 ‘찬품편’에 나오는 315가지 조선시대 음식을 모두 재현하고 조리법을 실었다.

‘수라일기’는 국가무형문화재 38호 조선왕조궁중음식 기능 보유자인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 원장과 정길자 궁중병과연구원 원장, 궁중음식연구회 회원 등 20여명이 공동으로 저술했다. 한 원장은 “의궤에는 음식 이름이 조리법 순으로 나오고, 쓰인 재료와 분량만 나온다”면서 “궁중음식연구회 회원들이 함께 모여 조선시대의 다른 조리서들과 문헌들을 참고해 여러 번 실험하면서 조리법을 썼다”고 설명했다.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는 추천사에서 “조선왕실 음식문화의 유산을 장기적으로 연구하고 체계적으로 재현한 성과가 돋보이는 책”이라며 “이 책을 통해 조선왕실이 지향했던 음식문화의 은은하고 정갈한 맛과 멋이 사람들에게 깊이 각인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