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곳도 다르고, 안면도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마음이 통한 두 할머니가 있습니다. 경북 경산시에 살고 있는 노모(83) 할머니와 울산에 거주하는 유모(89) 할머니. 두 분은 그동안 조금씩 아껴 모은 종잣돈을 들고 지역단체를 찾았습니다.
“저… 기부하려고요.”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83세 노 할머니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100만원 짜리 수표 5장(500만원)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기부했다고 2일 밝혔습니다. 노 할머니는 2003년부터 기초생활수급자로 보호를 받고 있는 독거노인입니다. 생활비만으로도 빠듯할텐데, 무려 15년 동안 수급비를 모았다고 합니다.
지체장애가 있는 노 할머니는 거동도 편치 않습니다. 그래서 “건강이 허락할 때 기부를 해야겠다”고 하셨다네요. 노 할머니는 “지체장애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지만 주위에 더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어 기부를 하게 됐다”며 “작은 도움이 큰 도움으로 쓰였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같은날 울산에서도 뭉클한 나눔이 있었습니다. 89세 유 할머니가 울산시청 노인장애인복지과를 찾아 200만원을 기부한 겁니다.
하얗게 센 머리를 가지런히 쪽진 유 할머니는 성금을 시각장애인 복지에 써달라고 말했습니다. 외부에는 알리고 싶지 않다고 했죠. 200만원은 용돈을 모아 마련했다고 합니다.
알고보니 유 할머니는 해방 직후 공무원으로 근무한 이력이 있었습니다. 1945년 당시 화진심상소학교 방어진임시분교에서 1년간 교편을 잡았고, 1947년부터 5년간 방어진읍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습니다. 이날 유 할머니는 오래도록 보관해 온 공무원증도 공개했습니다. 수기로 작성된 희귀 공무원증은 울산 박물관에 기증될 예정입니다.
유 할머니의 마음 역시 노 할머니와 비슷하겠지요. ‘더 늦기 전에 기부 해야지’, 그런 결심으로 집을 나섰을 겁니다. 두 할머니가 살아오신 80여년의 세월이 눈에 그려집니다. 자신도 모르게 이미 많은 사랑을, 따뜻함을, 넉넉함을 세상에 베풀어오셨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