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아니다?”…평가원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안 논란 예고

입력 2018-05-02 13:10 수정 2018-05-02 13:12
지난해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 사진=뉴시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 이후 만든 새 교과서 가이드라인에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란 내용을 삭제했다. 김일성 주석에서 시작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 이어진 북한 체제도 정통성을 갖는 합법 정부란 해석이 가능해진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같은 북한의 도발이나 북한 인권 내용도 없앴다.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로 고치도록 했다. 진보 역사학계의 시각이 대거 반영된 가이드라인이 예고되면서 교육부 최종 결정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교육부는 3일 평가원이 만들어 교육부에 보고한 중학교 역사·고교 한국사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 시안을 공개했다. 교육부는 평가원의 시안을 바탕으로 역사과 교육과정심의회 등 내부 논의를 거쳐 올 상반기 중에 집필기준을 확정 고시한다. 집필기준은 검정 교과서 집필진이 준수해야 할 가이드라인이다.

평가원은 현행 집필기준에 명시된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론(論)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학생에게도 가르쳐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진보 역사학계는 1948년 12월 유엔 총회 결의에 언급된 ‘유일 합법정부’의 인정 범위를 한반도 남쪽으로 국한해 해석한다. 보수 역사학계는 한반도 전체로 보고 남한만 유일 합법정부라고 본다. 남북한 정통성을 둘러싸고 벌이는 역사학계의 해묵은 논쟁인데 평가원이 진보 역사학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로 수정됐다. 보수 진영은 자유를 빼면 북한의 인민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와 구분이 모호해진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한다. 평가원은 자유민주주의가 유신 헌법의 잔재이고 과거 국정교과서나 현행 사회과 교과에도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혼용됐으므로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평가원은 1948년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대한민국 수립’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수정했다. 1948년을 건국으로 격을 높이면 항일투쟁의 역사와 임시정부 법통을 부인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는 진보 역사학계의 주장을 반영했다. 다만 6·25전쟁 관련해서는 당초 ‘남침’이란 말을 뺐다가 보수 진영의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남침으로 시작된’이란 말을 추가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등 북한도발은 집필기준에서 삭제하고 교과서 집필진 재량에 맡겨졌다. 평가원은 집필기준에 이런 내용을 일일이 열거하면 집필에 불필요한 제약을 준다고 주장했다. 집필기준에 굳이 넣지 않아도 역사 서술의 흐름 상 빠지기 어렵다는 논리다. 북한의 독재 세습체제와 북한 인권, 베트남참전과 새마을운동도 마찬가지 논리로 삭제했다. 동북공정도 빠졌는데 이에 대해 “동북공정 용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면 동아시아 갈등이 동북공정으로만 한정돼 교과서에 서술될 우려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평가원 시안은) 교육부가 평가원에 의뢰한 연구용역 보고서로 봐야 타당하다”며 “전문가로 구성된 역사과 교육과정심의회와 행정예고 기간을 통한 여론수렴을 거쳐 집필기준을 확정한다”고 말했다.

세종=이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