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 그림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돼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30일 전화기 너머 민정기(69) 작가의 목소리는 여전히 들떠 있었다. 지난 27일 남북 정상 간 판문점 선언의 서명식이 이뤄진 판문점 평화의집. 좌정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뒤편에 걸린 대작이 민 작가의 2007년 작 ‘북한산’이었다. 서명의 순간, 두 정상의 역사적인 장면과 함께 ‘북한산’ 그림도 전 세계에 타전됐다.
‘북한산’은 사상 처음으로 남측 땅을 밟는 북측 최고지도자를 서울의 명산으로 초대한다는 의미로 선정됐다. 북한식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다른 이 그림의 기법을 묻는 김 위원장의 질문에 문 대통령이 “북한산을 그린 서양화이지만 우리 한국화 기법이 사용됐다”고 답하기도 했다.
민 작가는 판문점 선언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성공적인 후속 조치를 도출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산 그림이 자칫 기상만 강조하면 삼각형 구도의 날카로운 이미지가 되기 십상이지요. 제 그림은 옛 지도처럼 북한산을 위에서 내려다보듯 그린 ‘북한산 전도’이지요. 북한산의 이미지를 다각도로 보고 핵심적 아름다움만 둥글게 모아놓았습니다. 그렇게 둥글둥글 타협을 통해 남과 북이 좋은 결과물을 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작품 소장자는 국립현대미술관이다. 때문에 작가도 “회담 이틀 전에야 작품 설치에 관련됐던 분으로부터 소식을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림은 6개월 이상 걸려 완성한 500호 이상 의 대작(264.5x 452.5㎝)이다. 작가는 “서너개 되는 가장 큰 작품 중의 하나”라고 소개했다.
민 작가는 서양화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서양화가 중시하는 원근법이나 투시도에 연연하지 않고, 특정 장소의 길이나 지리 구조, 건물 등을 지도처럼 펼쳐놓는다. 겸재 정선 진경산수의 21세기 버전이다. 직접 답사한 임진강 북한산 인왕산 등 현실의 풍경을 역사적 맥락 속에 녹여 넣어 역사화로서의 산수를 개척한 민중미술 대표 작가다. 민중미술의 출발점이 된 1980년 ‘현실과 발언’전 참여작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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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