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고 풀고, 희로애락의 변화가 백미…창극 ‘심청가’ 리뷰

입력 2018-04-30 10:45 수정 2018-04-30 22:32
창극의 미래를 조준…소리 극대화
무대와 소품, 의상, 동선 등 최소화

창극 '심청가'의 한 장면. 국립극장 제공

감정을 끊임없이 절제하다가 어느 순간 그것이 풀리면서 쾌감을 느낄 때가 있다. 긴장과 우려가 한순간에 기쁨과 희열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렇게 희로애락(喜怒哀樂)의 변화에서 오는 재미를 극대화한 창극 ‘심청가’가 최근 개막했다.

‘심청가’는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이 진행한 판소리 다섯 바탕(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 현대화의 마침표를 찍는 작품이다.

1부는 절제가 두드러졌다. 어린 심청(민은경)은 10여세부터 아버지 심봉사(유태평양)를 공양한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300석을 받는다는 약속을 하고 인당수에 몸을 던진다. 심청은 아버지와의 이별을 전후에 두고서 슬픔을 최대한 내면화한다.

창극 '심청가'의 한 장면. 국립극장 제공

이렇게 켜켜이 쌓인 감정이 2부에 들어와서 터진다. 특히 황성 맹인 잔치에 참석한 심봉사가 황후 심청(이소연)과 만나고 눈을 뜨는 대목에서는 해방감이 든다. 2부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뺑덕(김금미)도 욕망을 유감없이 드러내면서 유쾌한 분위기를 이끈다.

전국에서 모여든 맹인 잔치의 참여자들은 자신들이 눈을 뜨는 모습을 각자 손에 쥔 부채를 활짝 펼쳐 표현했다. 이번 ‘심청가’에서는 이 장면이 유독 돋보였다. 꽁꽁 묶고 있던 희로애락을 잔치 분위기에 한없이 풀어내면서 감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개막 전 배우 이소연도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눈을 뜰 때가 굉장히 시원한 감정이 든다”며 “감정이 가장 격정적으로 달려오다가 터져서 백미”라고 꼽았다.

창극 '심청가'의 한 장면. 국립극장 제공

손진책 연출가는 이런 감정의 변화에서 오는 희열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무엇보다도 소리를 부각했다. 극의 요소를 줄이고 창의 요소를 확장했다.

이를 위해 선택한 방식은 무대 요소의 단순화다. 무대는 목재 평상과 의자, 담장이 거의 전부다. 연꽃 등 소품이 필요한 부분은 스크린 영상으로 처리했다. 동선도 다른 창극보다 줄였다. 의상도 자극적이지 않은 파스텔 색깔로 무대와 어우러지게 준비했다.

도창 유수정은 소리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카리스마 있게 극을 이끌면서도 때로는 웃음이 나오도록 재치 있는 개입을 해서 무게감을 보여줬다.

창극 '심청가'의 한 장면. 국립극장 제공

‘심청가’는 대사의 한자 표현을 그대로 살리면서 최대한 원형을 전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부분이 관객들이 듣기에 어렵다고 느껴졌다. 한 번에 들어서는 이해되지 않는 표현이 많았다. 하지만 무대 옆 스크린을 통해 자막을 제공해 이런 부담을 줄이려고 했다.

‘심청가’는 ‘창극이 무엇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이다. 1인 판소리의 확장이면서도 기존 창극의 단순화다. 그 중간에서 다른 창극과 달리 판소리 쪽으로 치중했다. 어쩌면 창극의 미래일 수도 있다. 소리의 원형에 집중하면서도 원형보다 다채롭고 웅장하다.

결국 작품이 얼마나 좋은 평가를 받는가는 손 연출가가 맞춘 판소리와 창극의 비율을 관객들이 얼마나 적절하다고 판단 내릴지에 달려 있는 듯하다. 소리에 보다 집중한 이 실험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5월 6일까지 명동예술극장. 2만~5만원.

권준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