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전단지에 멍드는 거리… 애써 신고해도 ‘5만원 내면 그만’

입력 2018-04-30 06:00
27일 저녁 한 번화가에 전단지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 사진 = 김종형 인턴기자

지난 27일 저녁 서울의 한 번화가. 여기저기에 불법 전단지와 쓰레기들이 널려있다. 거리를 거닐며 저녁 식사 장소를 찾는 사람들에게 유흥업소 직원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유흥업소 홍보 전단지를 내밀었다. 전단지를 받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지만 손에 든 전단지 뭉치는 계속 줄어들었다. 사람들이 전단지를 받건, 받지않건 지속해서 바닥에 전단지 2~3장을 ‘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광장 주변을 서성이며 호객행위와 함께 전단지를 뿌리던 남성은 보행 도로가 자신이 뿌린 전단지로 가득 차자 조용히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 주말·공휴일 저녁마다 불법 전단지로 멍드는 거리


서울 번화가들이 불법 전단지로 멍들고 있다. 불법 전단지가 뿌려지는 시간은 대체로 직장인들이 퇴근한 다음인 저녁 시간. 금요일과 주말 늦은 시간에는 전단지와 쓰레기가 번화가 보행도로를 가득 메워 보도블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는 ‘전단지 뿌리기’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시간이다. 대부분 전단지 무단투기는 인근 유흥업소나 음식점, 퇴폐업소 등에서 이뤄진다.

사진 = 김종형 인턴기자

번화가를 청소하는 미화원은 거리에 쌓인 전단지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강북 번화가인 노원역 주변을 청소하는 미화원 A씨는 “주말이나 공휴일마다 이렇게 (전단지 쓰레기가) 나온다”면서 “최근에는 (내가)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서도 전단지를 뿌리는 호객행위를 계속해서 아예 호객행위가 끝나는 새벽에 나온다”고 말했다.

거리를 이용하는 시민들도 불만이다. 노원구에 거주하는 이모(27)씨는 “요즘에는 전단지를 주려고 하지도 않고 사람이 지나가면 주변에 던진다”면서 “호객행위 자체도 불편하지만, 거리가 더러워지고 발을 뗄 때마다 전단지가 걸리기도 해 불쾌하다”고 말했다. 동대문구에 거주하는 오모(28) 씨도 “전단지를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만이 아니라 아예 길바닥에 대놓고 뿌리면서 거리를 더럽히고 있다”면서 “경찰이 단속하는 것 같아도 그 순간만 피해있다가 단속이 끝나면 다시 거리로 나온다”고 전했다.


◆ 애써 본인 인증해 신고해도 ‘범칙금 5만원’

앞서 지난 20일 직접 유동인구가 많은 곳으로 이동하며 전단지를 뿌리는 남성을 동영상 촬영하고 ‘생활불편신고’ 앱을 통해 신고를 진행해봤다. 신고를 위해 앱 마켓에서 ‘생활불편신고’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려받고 휴대폰을 통한 본인 인증을 해야 했다. 절차를 마치고 촬영한 동영상을 첨부하자 ‘규격에 맞지 않는 영상입니다’는 메시지가 출력됐다. 울며 겨자 먹기로 동영상 편집 앱을 설치해 동영상 크기를 조정했다. 동영상 촬영부터 앱 설치, 본인 등록, 영상 편집까지 약 15분가량의 시간이 소요됐다. 전단지를 배포하던 남성은 다른 곳으로 사라진 뒤였다.

'생활불편신고'앱 신고 및 답변내용. / 사진 = 김종형 인턴기자

앱으로 신고한 뒤 경찰 측 답변이 달린 것은 약 일주일 가량 지난 뒤였다. 경찰 측 관계자는 ‘생활불편신고’ 앱 안에서 “해당 문제는 단속 중인 사안으로 불법광고물 전단지 배포는 짧은 시간 내 배포 후 신속하게 현장을 벗어나기에 단속에 어려움이 있다”며 “강력한 단속 활동을 전개코자 노력 중이다”는 답을 남겼다. 해당 업주나 살포자에 대한 처벌을 진행했다는 언급은 없었다.

경찰 측에 따르면 현재 불법 광고물 무단부착이나 무단투기에 대한 처벌은 5만원 가량의 범칙금 부과가 전부다. 경찰은 지구대 경력을 단속 인원으로 활용해 해당 행위를 적발할 경우 경범죄처벌법 3조1항 9호에 따라 범칙금을 부과하고 있다.

단속현장 역시 녹록치 않다. 수법의 고도화 때문이다. 인근 구청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최근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전단지를 살포하는 등 살포 수법이 고도화돼 단속이 어렵다”면서 “전단지에 쓰여 있는 번호로 범칙금을 부과해도 이들 대부분이 대포폰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단속에 지장이 있다”고 밝혔다.


◆ 일부 구는 ‘선제적 대응’으로 성과…“단속방법 개발도 좋지만 인식 개선부터”

서울 내 일부 기초자치단체에서는 특별 전담팀을 구성하고 단속 시간을 늘리는 등 적극적으로 불법 전단지와의 전쟁에 나서고 있다. 당국에서 전격적인 단속에 나서자 업주들은 이미 단속된 번호가 찍힌 전단지 하단에 다른 번호가 찍힌 도장을 찍어 눈속임을 하고 안심번호를 이용하는 등 지능적인 배포 수법을 개발했다.

서울 강남구는 2012년 7월부터 '불법·퇴폐행위근절 특별전담 TF’를 구성하고 홍보에 사용된 전화번호를 이용 중지시키는 강경책을 실시하고 있다. 또 매주 인근 주민센터와 합동 정비를 실시하는 등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이 결과 강남구는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불법 성매매·대부업 전단지 5만142장을 수거·폐기하고, 전단지에 사용된 이동전화번호 197개를 이용 중지시켜 인근 주민 호응을 얻었다.

27일 한 남성들이 보행 중에 전단지를 살포하고 있다. / 사진 = 김종형 인턴기자

지능화된 살포 수법에 맞서 신기술을 도입한 기초자치단체도 있다. 서울 마포구는 무차별적으로 살포되는 전단지에 대해 서울시의 ‘전화통화 불능화 프로그램’을 활용할 계획이다. ‘디도스’ 원리와 비슷하게 작동하는 이 프로그램은 전단지에 적힌 전화번호로 3초마다 번호를 바꿔가며 전화를 거는 프로그램이다. 잇단 착신으로 해당 전화번호를 사용하지 못하게 만든다. 마포구는 프로그램 사용과 동시에 미화원을 추가로 투입하는 등 깨끗한 거리를 만들기 위한 보강대책을 지난 4일부터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자치단체가 집중 단속 중인 곳을 제외한 거리는 주말·공휴일 저녁마다 몸살을 앓는다. 불법 전단지를 주로 단속하는 한 경찰 관계자는 “단속하는 방법 한 가지가 개발되면 또 그 단속을 피하는 방법이 수십 가지 나온다”며 “범칙금 규모 자체가 크지 않아 단속 후에도 ‘그 정도 벌금 내고 말지’ 하며 다시 살포에 나서는 업주도 많다. 새로운 단속방법 개발도 좋지만 전단지 살포를 하는 업주들이 해당 행위가 여러 사람에게 불편을 주는 행위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형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