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해야 할 것 같은데…” 이렇게 말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환담 장면을 촬영하던 남북 당국의 카메라맨 4명을 내보냈다. 주위를 물린 뒤 그가 꺼낸 말은 남북 ‘시간통일’이었다.
남북 표준시 통일 문제는 정상회담 의제에 들어있지 않았다. 김정은 위원장이 전격적으로 제안했다. 그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온 건 오후 6시18분이 넘어서였다. 만찬장에 가기 직전 두 정상 내외가 잠시 환담할 때 30분 차이 나는 남과 북의 시간을 얘기했다. 하루종일 머릿속에 맴돌았던 듯 “얘기해야 할 것 같은데…”라면서 말문을 열었다.
청와대는 29일 판문점 평화의집 환담장 대화 분위기를 전하며 표준시 논의가 이뤄진 정황을 소개했다. 환담은 오후 6시18분부터 10여분간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오늘의 합의들을 그저 보여주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해나가는 모습이 중요하다. 많은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표준시 얘기를 꺼내면서 “왜 자꾸 갈라져 가는 걸 만드는지 모르겠다. 합치려고 해야 한다. 남북은 같은 땅이고 이곳에 오기까지 불과 몇m 걸어왔을 뿐인데 시간이 왜 다른가. 오늘 좋은 합의를 했으니 이번 기회에 시간을 통일하자”고 했다. 문 대통령은 즉시 “북한도 과학기술 강국을 목표로 한다고 들었다. 표준시 외에도 남북 표준이 다른 것들이 있는데 맞춰나가자”고 화답했다
이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검은색 가죽시계,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은색 금속시계를 차고 있었다. 남매의 시계는 각기 다른 시간을 가리켰다. 김 위원장은 평양 표준시, 김 부부장은 서울 표준시에 시간을 맞춘 터라 동생 시계가 30분 빨랐다. 빽빽한 일정에 혹시 시간을 지키지 못할까봐 김 부부장이 서울 시간을 챙겨가며 김 위원장을 보좌한 것으로 추정된다.
청와대도 이날 남북 시간 차이를 고려해 평화의집에 서울과 평양 표준시에 맞춰진 시계 2개를 각각 걸어놨다. 두 대통령의 첫 만남이 오전 9시30분에, 첫 회담이 오전 10시30분에 잡혀 있었던 것 역시 평양 표준시를 고려해 청와대가 주요 일정의 시작을 ‘*시 30분’으로 맞췄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왔다.
서울과 평양은 그동안 30분 시차가 있었다. 한국은 협정세계시(UTC)보다 9시간 빠른 동경 135도가 기준(UTC+09:00)이지만 북한은 동경 127도 30분(UTC+08:30)을 기준으로 한다. 광복 70주년이었던 2015년 8월 북한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우리나라 표준시를 빼앗았다”며 평양 표준시를 도쿄 표준시보다 30분 늦췄다. 서울 표준시는 도쿄 표준시와 같다.
같은 장소에서 ‘두 개의 시간’이 공존하는 기묘한 상황은 두 정상의 합의로 이제 해소할 수 있게 됐다. 청와대는 평양 표준시를 서울 표준시에 맞춰 남과 북이 표준시를 ‘통일’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표준시 통일은 내부적으로 많은 행정적 어려움이 수반되는 일인데, 북측이 이를 감수하고 결정을 내렸다“며 "국제사회와의 조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결정을 토대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을 내며 표준시 변경을 공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남북 교류협력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으로 보인다. 남북 표준시가 달라진 후 판문점 연락채널 등 남북 간 소통 과정에서 업무 개시 시간이 달라지며 불편함과 잦은 해프닝이 초래됐다. 윤 수석은 "남북, 북미 교류협력에 장애물을 제거하겠다는 결단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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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