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알자] ‘못살겠어서’ 대화? ‘잘살기 위해서’!… 경제로 본 北의 변화

입력 2018-04-29 06:30

남북 정상이 높이 5㎝ 군사분계선을 한 걸음에 성큼 넘으면서 멀게만 느껴졌던 북한은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다. 판문점 선언이 놀라운 건 상징성이 아니라 ‘현실성’ 때문이다. ‘북핵’이란 용어가 사라질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고, 남북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는 세상은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다. 매스컴을 통해 접했던 북한을 이제 ‘삶’에서 체감하게 될지 모른다. 우리는 북한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제대로 알아야 할 때가 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7일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한의) 교통이 불비해 육로로 초청하기가 민망하다”는 말을 했다. 평양에서 판문점까지 차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남한에서 같은 거리를 갈 때보다 2배 가까이 소요된다고 알려졌다. 이런 현실을 김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인정할 만큼 북한의 경제 인프라는 열악하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고난의 행군’ 때와 비교하면 오히려 많이 나아진 편이다. 국제적 고립이 심화됐던 1990년대 중·후반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난은 이상기후에 따른 대규모 홍수 등과 맞물려 경제 기반이 황폐화됐다. 북한 전역에서 수십만명이 굶어죽었다. 김정은 체제로 5년을 보낸 지금 북한의 경제사정은 물론 어렵지만 20여년 전처럼 아사(餓死)를 걱정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더디긴 하지만 북한경제는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산업기술이 조금씩 고도화의 길을 걸어 왔고, 식량난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나는 모습이 뚜렷해지고 있다. 2016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3.9%로 1999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최근 강화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는 북한경제 성장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펴낸 북한경제리뷰에는 ‘수입품목 분석을 통해서 본 북한 경제동향’이란 논문이 수록됐다. 북한 공산품 수입액을 기술수준별로 고위·중고위·중저위·저위로 나눠 살폈다. 어떤 원료나 제품을 들여와 가공 또는 소비하는지를 보면 북한의 산업기술 수준이나 시장수요의 변화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논문은 과거 석유가공품, 플라스틱 등 중저위 제품 수입에 치중하던 북한이 최근 한 단계 높은 중고위 제품 수입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2007년 10억3231만 달러로 전체 공산품 수입의 절반을 차지했던 중저위기술 제품 수입은 2016년 7억2562만 달러(전체의 28.4%)로 줄었다. 반면 화학원료·제품, 자동차, 전기기기·장비 등 중고위 제품 수입액은 같은 기간 4억9156만 달러에서 9억1048만 달러로 급증했다. 비중도 24.9%에서 35.6%로 늘었다.


휴대전화나 노트북 등 고위기술 제품 수입도 2007년 1억1777만 달러 수준에서 2016년 3억921만 달러로 163% 늘었다. 기획재정부 김양희 사무관(북한학 박사)은 “수입품목 변화는 원재료를 가공하는 북한의 산업기술이 점점 고도화되고 있고, 북한 내 시장수요도 그만큼 다양해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김정은 체제 들어 북한에 사유화가 확대되고 시장도 안정적으로 성장해 왔다는 것을 뜻한다. 북한 GDP(한국은행 통계)는 2007년 266억 달러에서 2016년 311억 달러로 증가했다. 2011년 이후 2015년을 제외하고는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을 옭아맸던 식량난도 차츰 해소되는 중이다. 지난해 북한의 식량 생산량은 471만t으로 추정된다. 연간 수요량 560만t은 여전히 달성하지 못했지만 최악의 상황은 아니다. 동국대 고유환 북한학과 교수는 “해외 수입 등으로 어느 정도 충당이 가능한 수준으로 보인다”며 “대규모 아사 등 극단적인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갈 길 바쁜 북한 입장에서는 국제사회의 제재가 뼈아프다. 특히 유엔 안보리의 2016년 11월 북한의 석탄 수출을 제한하는 결의안 2321호와 지난해 9월 대북 원유공급을 동결하고 섬유제품 수출을 금지한 2375호는 북한의 대중수출 급감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 교수는 “북한이 대북제재와 핵협상·체제보장을 연계시키지 않는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지만, 이런 경제적 압박이 북한의 입장변화를 불러 온 여러 이유 중 하나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북한 김정은 정권이 바라는 건 중국과 같은 고속성장”이라고 진단했다. 노동력의 수준, 기술력 발전 정도, 지하자원 등의 조건을 보면 중국처럼 경제적 성장을 이루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정권 내부의 시각이란 것이다.

또 경제성장과 사회주의 체제를 병행하는 것, 더 구체적으로는 경제성장을 하면서 일당독재 체제를 지속하는 것도 가능함을 중국 모델로 확인한 터라 ‘성장 욕구’가 더욱 커졌다고 그는 설명했다.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김정은 위원장은 할아버지의 전략을 본떠 시작했던 핵·경제 병진노선을 ‘경제’ 중심 노선으로 전면 수정했다. 북한이 전향적 자세로 대화의 장에 나서게 된 이유를 경제적 측면에서 분석하면 “못 살겠어서”보다 “잘살기 위해서”에 더 가깝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