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4·27 남북 정상회담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남북 정상의 첫 대면에서부터 탄성을 자아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날 오전 9시28분께 판문각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비롯한 공식 수행원과 경호원 등과 판문각 계단을 걸어내려왔다. 북한 최고 존엄으로 판문각 앞까지 승용차를 타고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됐만 역사적 만남을 의식한 듯 직접 걸어내려와 극적 효과를 더했다.
김 위원장은 곧장 군사분계선 앞에 선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다가왔다.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 뒤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문 대통령과 북측 군사분계선을 넘는 ‘깜짝 월경’을 연출했다. 문 대통령이 먼저 “(김 위원장은) 남측으로 오시는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느냐”고 묻자 남쪽 땅을 밟은 김 위원장이 즉흥적으로 “그럼 지금 넘어가볼까요”라고 문 대통령을 이끌었다. 문 대통령은 군사분계선 너머 북쪽 땅을 밟은 뒤 김 위원장과 다시 악수를 나나눈 뒤 남쪽으로 돌아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을 지켜본 우리 수행원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냈고, 취재진들도 탄성을 터트렸다. 김 위원장의 즉흥적이고 대담한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파격은 남측 자유의집 앞에서도 계속됐다. 남북 정상은 오전 9시35분 국군 의장대 사열한 뒤 수행원들과 기념사진 촬영을 했다. 이번엔 문 대통령의 제안이었다. 김 위원장이 “오늘 이 자리에 왔다가 사열을 끝내고 돌아가야 하는 분들이 있다”고 말하자 문 대통령은 “그럼 가시기 전에 남북 공식 수행원 기념으로 사진을 함께 찍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파격의 하이라이트는 ‘도보다리 산책’이었다. 남북 정상은 오후 일정으로 정전협정이 체결된 해인 1953년생 반송을 식수한 뒤 도보다리로 향했다. 환담을 이어가며 T자 구조의 도보다리 끝에 마련된 벤치에 앉은 정상들은 배석자 없이 30분 가량 단독 회담을 이어갔다. 멀리 카메라에 잡힌 김 위원장은 때로는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미소를 띄기도 하며 문 대통령과 밀도있는 담소를 나눴다. 공동선언문과 내용과 다가오는 북미회담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추측된다.
공동선언문인 ‘판문점 선언’ 합의 발표에 앞두고도 파격은 이어졌다. 김 위원장이 먼저 문 대통령을 껴안았다. 오후 6시께 평화의집에서 판문점 선언문에 사인을 한 뒤 문 대통령이 양팔을 먼저 뻗었고 서로를 왼쪽, 오른쪽으로 번갈아가며 껴안았다.
남북 정상은 서명식 직후 평화의집 앞에서 선언문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고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함께 선언한다”며 “오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나는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는 것이 우리의 공동 목표라는 것을 확인했다. 앞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남과 북이 더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북측이 먼저 취한 핵동결 조치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소중한 출발이 될 것”이라며 북한의 핵실험 중단 및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선언을 높이 평가했다.
김 위원장 역시 “북과 남이 이해와 믿음에 기초해 민족의 대의를 먼저 생각하고 그에 모든 것을 지향시켜나가면 북남은 더욱 가속화하고 통일과 민족 번영도 앞당겨 이룩할 것"이라며 “정작 마주치고 보니 북과 남은 역시 서로 갈라져 살 수 없는 한 혈육이고 그 어느 이웃에도 비길 수 없는 동족이란 것을 가슴 뭉클하게 절감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늘 전체 인민과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수표(증명이나 확인을 위해 하는 일정한 표시)한 이 합의가 역대 북남 합의서처럼 사장화된 불미스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 두 사람이 무릎을 마주하고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함으로써 반드시 좋은 결실이 맺어지도록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정지용 기자 jyje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