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7일 판문점 선언 공동발표 자리에서 “여러분”이란 표현을 썼다. “남과 북의 여러분”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용한 “남북 국민 여러분, 그리고 해외 동포 여러분”과는 상당히 다른 어감을 갖고 있었다. 이 표현은 그의 발표 내내 이어졌다. 왜 이렇게 “여러분”이란 표현을 고집했을까.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날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합의 내용을 공동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존경하는 남과 북의 국민 여러분”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선언 중간에도 “존경하는 남북의 국민 여러분” “남북 국민에게 좋은 선물을 드릴 수 있게 됐다”면서 ‘국민’이란 표현을 여러 차례 사용했다.
반면 김 위원장은 ‘국민’이란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그냥 ‘여러분’이라고만 했다. 그가 읽은 발표문의 첫 문장은 ‘친애하는 여러분, 북과 남, 해외 동포 형제자매들’이라고 시작했다. 이후 ’국민’이나 ‘인민’이란 말을 생략한 ‘여러분’이란 표현은 4차례 더 등장했다.
“남조선 국민 여러분” 또는 “남조선 인민 여러분” 또는 “해외 동포 여러분” 등의 선택지를 놔두고 왜 그냥 “여러분”이란 표현을 택했을까.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엔 국민이란 표현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북에선 ‘국민’ 대신 ‘인민’이라고 하는데 이번 선언에서 남한과 세계를 향해 ‘인민’이란 표현을 쓸 수는 없으니 그냥 ‘여러분’이라고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북한의 공식 국명에 등장하는 말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국민’이란 말 대신 북한은 ‘인민’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국민’에 담겨 있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주권자’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문장으로 사실상 ‘국민’을 정의한다. 이런 표현은 사실상 1인 지도체제이자 ‘수령국가’인 북한의 용어 ‘인민’과 결코 같을 수 없다.
이처럼 국민과 인민의 차이, 남과 북의 용어 뉘앙스를 고려해야 하는 데다 ‘해외동포’를 표현하는 문제까지 더해져 무척 복잡해진 어휘 선택의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그냥 “여러분”이란 단어를 택했다. 조금은 어색하지만, 가장 무난한 표현이었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과 자신을 동시에 호명할 때는 꼬박꼬박 자신을 “저”라고 낮춰 부른 점도 눈에 띈다. 북한에서 ‘최고 존엄’의 지위를 갖는 그는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며 총 3차례 “저와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칭하며 아버지뻘인 문 대통령을 예우하는 모습을 보였다.
먼저 발표한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평화를 바라는 8000만 겨레의 염원으로 역사적인 만남을 갖고 귀중한 합의를 이뤘다”고 말한 것과 사뭇 달랐다. 반면 “우리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결심을 안고 나는 오늘 판문점 분리선을 넘어 여기에 왔다” 등 본인만을 주어로 할 때는 ‘나’라는 표현을 썼다. 1984년생인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보다 31살 어리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