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7일 2018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전 세계에 ‘김정은 스타일’을 알렸다. 김 위원장의 화법은 솔직하고 화통했다. 때로는 예상을 뛰어넘는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판문각을 걸어나오는 순간부터 정상회담이 비공개로 전환된 오전 10시22분까지 김 위원장이 남긴 ‘파격’ 발언을 정리했다.
◆ “북쪽으로 넘어가 볼까요?”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9시28분쯤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남쪽 땅을 밟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짧은 인사를 나눈 뒤 북쪽 판문각 바라보고 한번, 남쪽 자유의집 바라보며 또 한번 기념촬영했다.
이후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남측으로 오시는데 난 언제쯤 (북에) 넘어갈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때 김 위원장이 “그럼 지금 넘어가볼까요”라고 하면서 북측으로 손을 뻗었다. 문 대통령이 멈칫하자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손을 잡아 끌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었다.
문 대통령은 MDL을 한 걸음 넘어 북측 땅을 밟았다. 주위에서 탄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이후 문 대통령은 다시 김 위원장과 손을 맞잡고 MDL을 넘어 남측으로 넘어왔다.
◆ “문 대통령 새벽잠 설치지 않게 제가”
두 정상은 전통의장대 호위를 받으며 평화의집까지 도보로 이동했다. 오전 9시48분쯤 평화의집 1층 환담장에서 간단한 대화가 오갔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께서 우리 때문에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하시느라 새벽잠을 많이 설쳤다는데 새벽에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셨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께서 대북특사단이 갔을 때 선제적으로 말씀해주셔서, 앞으로 발뻗고 자겠다”고 화답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한번 더 “(문 대통령이) 새벽잠 깨지 않도록 제가 확인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새벽잠’을 언급한 건 두번째다. 그는 지난 3월 평양을 방문한 대북특사단에게 “그동안 우리가 미사일을 발사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새벽에 NSC를 개최하느라 고생 많으셨다”며 “오늘 결심했으니 이제 더는 문재인 대통령이 새벽잠 설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 “남한 있다 북한 오면 민망…” “잘 연출됐습니까?”
문 대통령은 환담장 정면 벽에 놓인 박대성 작가의 ‘장백폭포’와 ‘일출봉’ 작품을 가리키며 두 그림을 간략히 소개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께서 백두산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아시는 것 같다”고 하자 문 대통령은 “난 백두산 가본 적 없다. 그런데 중국 쪽으로 백두산 가는 분들이 많더라”면서 “북측을 통해서 꼭 백두산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이 오시면 솔직히 우리 쪽 교통이 불편을 드릴 것 같다. 평창 올림픽에 갔다 온 분들이 평창 고속열차가 다 좋다고 하더라”면서 “남한의 이런 (좋은) 환경에 있다가 북으로 오면 민망스러울 수도 있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준비해서 대통령이 오시면 편히 오실 수 있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평화의집 2층 회담장에 입장한 뒤에는 신장식 작가의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 그림 앞에서 기념촬영이 진행됐다. 촬영이 끝나자 김영철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박수를 유도했다. 김 위원장은 “악수만 가지고 박수를 받으니까 쑥스럽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촬영이 끝난 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또 한번 그림에 대해 설명했다. 설명을 듣고 돌아선 김 위원장은 기자들을 향해 “잘 연출됐습니까?”라고 농담했다. 문 대통령과 기자단이 웃음을 터트렸고, 한 기자가 “네, 잘 됐습니다”라고 답했다.
◆ “평양냉면 멀리서… 멀다고 하면 안되갔구나”
본격적인 회담은 오전 10시15분쯤 시작됐다. 김 위원장은 모두발언에서 “오늘 저녁 만찬음식 가지고 많이 얘기하던데, 어렵사리 평양에서부터 평양냉면을 가져왔다”며 “편안한 마음으로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 과정에서 “(평양냉면이) 멀리서 왔다”고 강조하다 좌측에 배석한 여동생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을 쳐다보며 “아, 멀다고 말하면 안되갔구나”라고 혼잣말했다. 김 위원장은 물론 문 대통령 등 참석자들이 소리내 웃었다. 회담장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김 위원장은 “오늘 정말 허심탄회하게, 진지하게, 솔직하게, 이런 마음으로 (나왔다)”며 “문재인 대통령님과 좋은 이야기하고,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겠다는 걸 문 대통령 앞에서도 말씀드리고 기자 여러분에게도 말씀드린다.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맺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27일 오전 11시55분쯤까지 약 100분간 회담을 가졌다. 문 대통령은 남측에서, 김 위원장은 북측에서 각각 휴식을 취하고 있다. 오후 일정은 4시30분에 시작된다. 두 정상은 오후 첫 일정으로 MDL 인근의 ‘소떼 길’에 1953년생 소나무를 심을 예정이다. 남북정상이 심게되는 소나무는 평화와 번영을 상징한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