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 유쾌, 화통’ 김정은 스타일… 정상회담 말말말

입력 2018-04-27 15:11
판문점=이병주 기자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7일 2018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전 세계에 ‘김정은 스타일’을 알렸다. 김 위원장의 화법은 솔직하고 화통했다. 때로는 예상을 뛰어넘는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판문각을 걸어나오는 순간부터 정상회담이 비공개로 전환된 오전 10시22분까지 김 위원장이 남긴 ‘파격’ 발언을 정리했다.

“북쪽으로 넘어가 볼까요?”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9시28분쯤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남쪽 땅을 밟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짧은 인사를 나눈 뒤 북쪽 판문각 바라보고 한번, 남쪽 자유의집 바라보며 또 한번 기념촬영했다.

이후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남측으로 오시는데 난 언제쯤 (북에) 넘어갈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때 김 위원장이 “그럼 지금 넘어가볼까요”라고 하면서 북측으로 손을 뻗었다. 문 대통령이 멈칫하자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손을 잡아 끌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었다.

문 대통령은 MDL을 한 걸음 넘어 북측 땅을 밟았다. 주위에서 탄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이후 문 대통령은 다시 김 위원장과 손을 맞잡고 MDL을 넘어 남측으로 넘어왔다.

“문 대통령 새벽잠 설치지 않게 제가”

두 정상은 전통의장대 호위를 받으며 평화의집까지 도보로 이동했다. 오전 9시48분쯤 평화의집 1층 환담장에서 간단한 대화가 오갔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께서 우리 때문에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하시느라 새벽잠을 많이 설쳤다는데 새벽에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셨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께서 대북특사단이 갔을 때 선제적으로 말씀해주셔서, 앞으로 발뻗고 자겠다”고 화답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한번 더 “(문 대통령이) 새벽잠 깨지 않도록 제가 확인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새벽잠’을 언급한 건 두번째다. 그는 지난 3월 평양을 방문한 대북특사단에게 “그동안 우리가 미사일을 발사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새벽에 NSC를 개최하느라 고생 많으셨다”며 “오늘 결심했으니 이제 더는 문재인 대통령이 새벽잠 설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남한 있다 북한 오면 민망…” “잘 연출됐습니까?”

문 대통령은 환담장 정면 벽에 놓인 박대성 작가의 ‘장백폭포’와 ‘일출봉’ 작품을 가리키며 두 그림을 간략히 소개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께서 백두산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아시는 것 같다”고 하자 문 대통령은 “난 백두산 가본 적 없다. 그런데 중국 쪽으로 백두산 가는 분들이 많더라”면서 “북측을 통해서 꼭 백두산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이 오시면 솔직히 우리 쪽 교통이 불편을 드릴 것 같다. 평창 올림픽에 갔다 온 분들이 평창 고속열차가 다 좋다고 하더라”면서 “남한의 이런 (좋은) 환경에 있다가 북으로 오면 민망스러울 수도 있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준비해서 대통령이 오시면 편히 오실 수 있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평화의집 2층 회담장에 입장한 뒤에는 신장식 작가의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 그림 앞에서 기념촬영이 진행됐다. 촬영이 끝나자 김영철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박수를 유도했다. 김 위원장은 “악수만 가지고 박수를 받으니까 쑥스럽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촬영이 끝난 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또 한번 그림에 대해 설명했다. 설명을 듣고 돌아선 김 위원장은 기자들을 향해 “잘 연출됐습니까?”라고 농담했다. 문 대통령과 기자단이 웃음을 터트렸고, 한 기자가 “네, 잘 됐습니다”라고 답했다.

“평양냉면 멀리서… 멀다고 하면 안되갔구나”

본격적인 회담은 오전 10시15분쯤 시작됐다. 김 위원장은 모두발언에서 “오늘 저녁 만찬음식 가지고 많이 얘기하던데, 어렵사리 평양에서부터 평양냉면을 가져왔다”며 “편안한 마음으로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 과정에서 “(평양냉면이) 멀리서 왔다”고 강조하다 좌측에 배석한 여동생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을 쳐다보며 “아, 멀다고 말하면 안되갔구나”라고 혼잣말했다. 김 위원장은 물론 문 대통령 등 참석자들이 소리내 웃었다. 회담장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김 위원장은 “오늘 정말 허심탄회하게, 진지하게, 솔직하게, 이런 마음으로 (나왔다)”며 “문재인 대통령님과 좋은 이야기하고,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겠다는 걸 문 대통령 앞에서도 말씀드리고 기자 여러분에게도 말씀드린다.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맺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27일 오전 11시55분쯤까지 약 100분간 회담을 가졌다. 문 대통령은 남측에서, 김 위원장은 북측에서 각각 휴식을 취하고 있다. 오후 일정은 4시30분에 시작된다. 두 정상은 오후 첫 일정으로 MDL 인근의 ‘소떼 길’에 1953년생 소나무를 심을 예정이다. 남북정상이 심게되는 소나무는 평화와 번영을 상징한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