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회담 내내 김정은 ‘밀착수행’… 사실상 ‘비서실장’

입력 2018-04-27 15:10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27일 남북 정상회담 내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밀착 수행했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그는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정상회담에도 배석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카운터파트 역할을 했다.

북측이 과거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에서 통일전선부장 한 명만 배석시켰던 점을 감안하면 김 제1부부장의 참석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전 세계로 생방송된 이번 회담을 통해 김정은 체제의 실세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는 평가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 제1부부장에게 “남쪽에서 스타가 됐다”고 말했다.

회색 치마 정장을 갖춰 입은 김 제1부부장은 김 위원장의 동선을 그림자처럼 따랐다. 김 위원장이 평화의집 1층에 도착해 방명록을 쓸 땐 옆으로 다가가 검정 케이스에서 펜을 꺼내 건네줬다. 그는 서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펜을 넘겨받고 조용히 뒤로 빠졌다. 서명대에는 남측이 준비해놓은 사인펜이 있었지만 김 위원장은 김 제1부부장이 건넨 펜을 사용했다. 남측 어린이들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온 김 위원장에게 환영 선물로 준 꽃다발도 김 제1부부장이 챙겼다.

김 제1부부장은 오전 회담에선 김 위원장의 왼편에 앉아 발언을 열심히 받아 적었다. 이날 회담엔 남측에서 임 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북측에서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김 제1부부장이 배석했다. 남북 간 국정원·통전부 라인이 활발히 가동되고 있는 만큼 서 원장과 김 부위원장, 임 실장과 김 제1부부장으로 급을 맞춘 것으로 해석된다. 1, 2차 남북 정상회담 땐 우리 측 배석자가 2~3명 많았는데 이번엔 동수로 했다.

김 제1부부장은 문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다. 그는 지난 2월 김 위원장의 특사로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을 만나 남북 정상회담 제안이 담긴 친서를 전달한 바 있다. 2박 3일 방남 기간 문 대통령과 네 번 만나 친분을 쌓았다. 당시 턱을 가볍게 치켜든 특유의 제스처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판문점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이 사전 환담 때 배석한 김 제1부부장을 가리키며 ‘남쪽에서 스타가 돼 있다’고 말했고 장내에 큰 웃음이 일었다”며 “김 제1부부장도 얼굴이 빨개졌다”고 소개했다.

김 제1부부장은 공식 수행원들과는 떨어져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과 함께 움직였다. 김창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부터 노동당 서기실에서 근무해 김씨 일가의 ‘집사’로 불리는 인물이다.


한편 김 제1부부장은 당 선전선동부 소속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 위원장은 환담에서 “김 부부장 부서에서 ‘만리마 속도전’이란 말을 만들었는데 이를 남과 북의 통일 속도로 삼자”고 말했다. 만리마 속도는 주민들의 경제 건설 참여를 독려하는 선동 구호다. 선전선동부는 주민들에 대한 사상 교육과 체제 선전을 전담하는 당 핵심 부서다.

◆ ‘필기맨’ 역할 김영철, 文대통령 “통 크게” 발언도 메모

오전 회담에서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은 ‘필기맨’ 역할을 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발언할 때마다 그의 펜은 바빠졌다.

오전 10시15분 판문점 평화의집 2층 회담장에 도착한 두 정상은 출입문에 들어서면서 금강산 그림 그려져 있는 단상에 오르자 행사진행자가 "기념촬영 하겠습니다. 금강산 그림 앞에서"라고 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그림 앞에서 악수하는 포즈로 촬영을 마치자 김영철 부장은 먼저 박수를 치며 주변 남북 관계자들의 박수를 유도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악수만 가지고 박수를 받으니까 쑥스럽네요”라고 말해 참석자들은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촬영을 맡은 이들을 향해 "잘 연출됐습니까?"라며 여유 있게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두 정상과 수행원들이 회담 테이블에 착석한 뒤 김정은 위원장이 먼저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그러자 김여정 제1부부장이 메모를 시작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꼼꼼히 적어 나갔다. 이어 문 대통령이 발언할 때는 김영철 부위원장이 펜을 들었다. 서로 역할 분담을 한 듯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모두발언을 하면서 자유로운 몸짓을 선보였다. 문 대통령과 임종석 실장은 만면에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계속 눈을 맞췄다.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냉면을 가져왔다고 말할 때 문 대통령은 환하게 웃었다. 이어 문 대통령이 모두발언을 하며 "통 크게 대화를 나누자"고 하자 김영철 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메모지에 적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