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총참모장, 文대통령에 ‘경례’… 南합참의장, 김정은과 ‘악수’

입력 2018-04-27 14:39

남북 군 수뇌부는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서로 다른 인사법을 선보였다. 북한 인민군 수뇌부는 모두 문재인 대통령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남측 국방부 장관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까딱 목례’를 했고, 합참의장은 거수경례를 생략한 채 악수를 했다.

김 위원장은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우리 군의 의장대 사열 후 북측 수행단을 문 대통령에게 소개했다. 북한 인민군 서열 2위인 이명수 총참모장은 문 대통령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이후 인민군 서열 3위인 박영식 인민무력상도 문 대통령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이 참모장과 박 인민무력상은 다소 굳은 표정이었다. 문 대통령이 경례를 받은 후 먼저 손을 내밀자 악수를 했다. 문 대통령과 이들 사이 별도의 인사말이 오가지는 않았다.

북한군 총참모장은 남측의 합참의장, 인민무력상은 국방부 장관에 각각 해당한다. 북한 군 수뇌부가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않은 우리 군 통수권자에게 거수경례를 한 것은 이례적이다. 한 군사 전문가는 “군복을 입은 군인의 거수경례는 과거 전투에서 칼을 쓰던 시절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지 않은 무장해제 상태’라는 점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북측 수행단의 인사를 받기 전에 남측 수행단을 차례로 김 위원장에게 소개했다. 정장을 갖춰 입은 송영무 장관은 얼굴에 살짝 미소를 띠고 있었다.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 김 위원장과 악수를 한 후 까딱 고개만 숙였다. 키 차이가 큰 김 위원장을 내려다보는 자세가 연출됐다.

남측 수행단 중 유일한 현역 군인인 정경두 합참의장은 시종일관 굳은 표정이었다. 정 의장은 김 위원장에게 거수경례나 목례를 하지 않고 악수만 나눴다. 정 의장은 정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거수경례를 하는 게 원칙이었지만 악수 후에도 무표정을 유지했다.

정부 관계자는 “군령권을 가진 현역 군 서열 1위의 정 의장이 고개를 숙이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16년 국방백서’에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으로 명시돼 있는 부분도 감안했다는 후문이다.

우리 군 지휘부는 김 위원장과의 첫 대면 인사법에 대해 상당히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사례를 참고했으며 주변의 여러 조언을 들었다. 북한 최고 지도자와 악수를 나눈 유일한 군 인사는 김장수 전 국방부 장관이었다. 김 전 장관은 2007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첫 대면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고 뻣뻣한 자세로 악수를 해 ‘꼿꼿 장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와 반대로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은 고개를 숙이며 두 손으로 김정일 위원장의 손을 감싸 쥐는 공손한 모습을 보여 ‘굽실 만복’이라는 조롱 섞인 말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송 장관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살짝 고개를 숙였다는 점이 김 전 장관과는 달랐다. 군 관계자는 “송 장관과 김 전 장관은 동일한 방법으로 고개를 숙이지 않은 채 악수를 했다”며 “살짝 고개를 숙이는 부분은 악수를 한 뒤 김정은 위원장이 인사말을 건넨 데 대해 호응하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 北지도자의 첫 南의장대 사열… 긴장했던 두 정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날 우리 군 의장대를 사열했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남측 육·해·공군으로 구성된 의장대를 사열한 것은 처음이다.

두 정상은 군사분계선(MDL) 앞에 도열한 전통의장대의 호위를 받으며 공식 환영식이 예정된 판문점 광장까지 이동했다. 두 정상이 이동하는 동안 양쪽에선 호위무사들이 장방형 모양을 이뤘다. 두 정상이 전통가마를 탄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자유의집을 우회하는 130m 길이의 레드카펫을 걸어 판문점 광장에 도착했다.

두 정상은 오전 9시40분쯤 광장 중앙 사열대에 올랐다. 의장 대장의 경례를 받고, 단상 아래로 내려가 의장대를 사열했다. 의장대는 단상 기준으로 왼쪽부터 군악대, 3군 의장대, 전통의장대, 전통악대 순으로 배치됐다. 전통의장대와 국군의장대 사열에 참가한 인원은 총 300명 규모로 알려졌다.

전통의장대 취타대는 행사 도중 남북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아리랑'과 ’신아리랑 행진곡'을 연주했다. 두 정상이 사열하는 동안에는 사성곡과 봉황곡이 각각 연주됐다. 이날 사열에선 국기게양과 국가연주, 예포발사 등은 생략됐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약식으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의장대 사열 행사 내내 굳은 표정으로 의장대를 응시했다. 사열대 위에서는 숨을 다소 거칠게 몰아쉬었고, 양팔을 벌린 채 부동자세를 유지했다. 법적으로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남측 군인들 앞에 선 상황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광장으로 이동하는 내내 웃음을 보였던 문 대통령도 의장대 사열 중에는 굳은 얼굴로 정면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판문점에서 우리 군 의장대를 사열했다. 의장대 사열은 정상외교의 대표적 의전행사다. 서로 상대국을 군사적 주권국가로 존중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북한에서 열린 지난 2차례 정상회담 때도 김대중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북한군 의장대를 사열했다.

◆ 김정은, 의장대 사열 때 경례 안한 까닭은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 함께 의장대 앞을 걸으며 문 대통령과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의장대 앞을 지나면서 손을 올려 경례를 받아준 문 대통령과 달리 김 위원장은 두 팔을 내린 채 걸음을 이어갔다. 경례 자세를 한 번도 취하지 않았다. 이는 국제 외교무대에서 통용되는 의장대 사열 관례에 따른 것이었다.

군 의장대 사열은 방문 인사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식으로 행해진다. 군악이 울리면 행사 주최국 지도자가 국빈과 함께 집총 자세로 선 의장대 앞을 지나가는 방식이다. 외빈을 맞는 의장대는 자국기와 자국 군기만 든다. 외빈 측 국기는 들지 않는다.

따라서 사열을 지켜보는 외빈은 사열 중 어떤 경우에도 예를 표하지 않는다. 사열을 진행하는 측 지도자(이번 경우에는 문 대통령)와 의장대장은 기수대 앞을 지날 때 걸어가며 거수로 국기에 대해 경례를 한다. 자국기에만 예를 갖추는 것이다. 이는 악수 등 상호작용이 있을 때엔 적용되지 않는다. 이번 경우에도 사열식이 끝난 뒤 문 대통령과 악수를 나눈 북측 인사들은 모두 경례를 하는 등 예를 갖췄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