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얼굴을 마주보고 역사적인 악수를 나눴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남쪽 땅을 밟은 것은 1953년 한국전쟁 정전협정 이후 65년 만에 처음이다. 두 정상이 MDL에서 만난 뒤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집 2층에 마련된 회담장에 앉기까지 45분이 걸렸다. 한반도 평화 여정에 나서는 두 정상의 모습은 한 편의 다큐 영화처럼 물 흐르듯 진행됐다.
◇ 오전 9시30분 MDL에서 첫 악수
오전 9시27분쯤 판문점 북측지역 판문각 1층 문이 열리자 김 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 인민복 차림의 김 위원장은 경호원을 대동하고 계단을 천천히 걸어내려왔다. 자유의집에서 기다리던 문 대통령도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T2)과 소회의실(T3) 건물 사이에 있는 MDL을 향해 발걸음을 뗐다.
김 위원장이 MDL에 도착하자 문 대통령이 폭 50㎝, 높이 5㎝ 크기의 콘크리트 경계석으로 된 MDL을 손으로 가리켰다. 김 위원장이 MDL을 넘으면서 북한 최고지도자가 65년 만에 남측 땅을 밟는 역사적 장면이 연출됐다.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나눈 두 정상은 잠시 서서 환담을 나눈 뒤 손을 맞잡고 판문각과 자유의집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했다.
깜짝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사진 촬영을 마치고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으로 안내하려 하자 김 위원장은 군사분계선 북측지역을 손으로 가리켜 특별한 제안을 했다. 판문점 북측지역으로 한 걸음 넘어가자는 제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았다.
◇ 김정은, 우리 군 사열… 북한군 수뇌부, 문대통령에 거수경례
두 정상은 우리 군 전통의장대 호위를 받으며 자유의집과 평화의집 사이에 마련된 공식환영식장으로 이동했다. 전통의장대가 연주하는 ‘대취타’가 판문점에 울려퍼졌다. 이후 사상 처음으로 북한 최고지도자가 우리 군을 사열했다.
놀랄만한 장면은 두 정상이 공식수행원들과 인사하는 자리에서도 나왔다. 먼저 남측 수행원들이 김 위원장을 맞이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정경두 합참의장 등이 김 위원장과 악수했다.
북측 수행원들도 문 대통령과 인사를 나눴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통일전선부장), 최휘 당 중앙위 부위원장(국가체육지도위원장), 이수용 당 중앙위 부위원장(국제부장), 이명수 인민군 총참모장, 박영식 인민무력상, 이용호 외무상,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문 대통령과 반갑게 악수했다. 특히 북한군 최고수뇌부인 이명수 총참모장과 박영식 인민무력상은 문 대통령에게 거수경례를 하기도 했다.
◇ 김정은 방명록 “평화의 시대, 역사의 출발점에서”
공식환영식을 마친 두 정상은 평화의집으로 이동했다. 김 위원장이 평화의집 1층에 마련된 방명록석에 앉자 동생인 김여정 제1부부장이 펜을 건넸다. 방명록에 “새로운 력사(역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역사의 출발점에서”라고 김 위원장이 쓰는 모습을 문 대통령이 오른편에서 지켜봤다.
회담은 당초 예정된 오전10시30분보다 15분 빠른 오전 10시15분에 시작됐다. 두 정상은 회담장 2층으로 올라가 폭 2018㎜의 타원형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청와대는 과거 회담 때와 달리 남북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눈다는 취지에서 회담 테이블을 타원형으로 제작했다. 문 대통령 양옆에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배석했고, 맞은편에는 김 위원장 양옆에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통일전선부장)이 자리했다.
김 위원장은 “정말 만감이 교차한다. 너무나 쉽게 넘어온 이 자리 오기까지 11년이 걸렸는데 왜 그 시간이 오래됐나, 왜 오기 힘들었나 생각이 들었다”며 “우리가 잃어버린 11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수시로 만나서 걸린 문제를 풀어나가고 마음을 합치자”고 말했다.
이에 문 대통령도 “한반도의 봄을 온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며 “김 위원장이 사상 최초로 군사분계선을 넘어오는 순간, 이 판문점은 분단의 상징이 아니라 평화의 상징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오늘 통크게 대화를 나누고 합의에 이르러서 온 민족과 평화를 바라는 이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큰 선물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며 “하루종일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 만큼 10년동안 못한 얘기들을 충분히 나누자”고 했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