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진리와 얼마나 멀어졌나 자각해야”…한국 최초 베리타스 포럼 준비하는 조영헌 교수

입력 2018-04-27 10:57 수정 2018-04-27 11:11

미국 하버드대에서 1992년 시작된 ‘베리타스 포럼(Veritas Forum)’이 한국에 온다. 베리타스 포럼은 삶의 모든 영역을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관성 속에서 토론하는 세계적 기독 지성 운동이다.

한국 최초의 베리타스 포럼은 다음 달 23~2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과학도서관·법학관 신관에서 열린다. 이번 포럼은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와 베리타스 포럼 아시아 디렉터 다니엘 조 목사가 지난해 6월 고려대에서 만난 자리에서 논의가 시작됐다.

첫날에는 저서 ‘소명’으로 유명한 오스 기니스 박사가 ‘포스트 진리 시대의 진리’를, 다음 날은 강영안 서강대 명예교수와 우종학 서울대 교수가 ‘존재하는 것들: 과학자와 철학자의 기독교적 사유’를 주제로 강연한다.

국민일보는 한국 최초로 열리는 베리타스 포럼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는 조 교수를 지난 최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만났다.

조 교수는 2011년부터 인문학과 성서를 사랑하는 모임(인성모)을 통해 ‘베리타스 포럼 이야기’ ‘세상이 묻고 진리가 답하다’ 같은 베리타스 포럼 관련 서적을 읽고 세속화된 대학에서의 기독 지성 운동을 꿈꿔왔다.

이번 베리타스 포럼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대학 내 기독 지성 운동의 회복이다. 신학대학이나 기독교학과, 선교단체에서만 이뤄지던 기독교 담론을 대학 구성원 누구나 참여 가능하도록 만드는 게 목표다. 또 모든 학문과 이론에 대한 기독교적 시각을 제시하고 비기독교인과도 자유롭게 대화하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한다.

향후 과제로는 단순히 미국 베리타스 포럼을 따라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한국 사회 특성에 맞게 적응시키고 인근 중국 일본 등의 국가에 있는 기독교 지성인들과도 협력하는 일이 꼽힌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

한국 베리타스 포럼 고려대 준비위원회의 대표인 조영헌 교수가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교수실에서 베리타스 포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요즘 대학의 풍토를 비춰볼 때 베리타스 포럼이 가지는 의미는 뭘까.
“베리타스는 진리라는 뜻이다. 진리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를 진리의 상아탑인 대학이 잃어버린 지 오래다. 문제는 원래의 추구해야 하는 자리에서 멀어진 상황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교수, 학생 등 대학구성원 모두가 그렇다. 가장 심각한 원인은 역시 한국 사회의 줄 세우기 문화다. 대학의 경쟁력이 자본의 힘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취업을 위한 공장으로 전락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던 선배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문제의식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하는 열패감 같은 게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가 거듭나기 위해 진리를 새롭게 찾기 시작할 수 있는 공동체는 역시 대학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사회 역시 서구처럼 급속한 세속화를 겪고 있다. 이번 포럼이 본연의 진리를 선포하는 동시에 대학교가 얼마나 진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지 지적으로 자성하고 신앙적으로 회개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거기서부터 모든 게 시작될 것이라고 본다. 회개하라는 예수님의 말은 도발적이고 경우에 따라 기분 나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참된 권위에서 나온 말이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권위가 사라졌다. 교수나 총장이 얘기해도 ‘당신이 뭐길래’라는 반응이 올 때도 있다. 우리 시대가 정말 잘 가고 있는 건지, 너무 멀리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자리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오스 기니스 박사를 연사로 초청한 이유는.
“오스 기니스 박사가 이름은 많이 알려졌는데 실제로 그 분이 주장한 내용이 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분이 진단하고 있는 서구 사회의 시대적 문제성에 대한 통찰력이 한국 사회에 유의미한 메시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스 기니스의 책 ‘선지자적 반시대성’은 르네상스에 대해 흥미로운 얘기를 한다. 그는 르네상스가 단순히 중세에서 고대로 시간의 의미에서만 회귀하는 게 아니라 성경과 신앙이 가리키는 진리로 돌아가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봤다. 종교가 세속화되는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진리를 포기할 수 없다는 희망이 르네상스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오스 기니스는 지금 상황 역시 새로운 진리의 빛이 뿜어져 나오기 직전 심각한 어둠이 닥친 것으로 본다. 한국 교회 역시 중세교회 마지막을 보는 것처럼 타락했다는 지탄을 받는다. 온갖 모순과 문제를 교회가 다 안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 베리타스 포럼을 최초로 시작하면서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부분은 뭔가.
“문제의 근원을 직시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문제에 대한 근본적 성찰 없이 계속 땜질만 하면 안 된다. 한국 베리타스 포럼은 이제 시작이지만 바로 ‘여기에 진리가 있다’고 외치기보다 ‘우리가 진리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나’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대학교 내의 기독교인 숫자도 줄었지만 그게 갖고 있는 역설적 가능성을 베리타스 포럼이란 행사를 통해서 느끼고 있다. 교수 한 사람 학생 한 사람의 중요성이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참여하는 고려대 교수님들 중에 10년 안에 베리타스 포럼 고려대를 통해 진리와 학문 사이의 간극을 연결할 수 있는 사람들을 생겨 대학에 정착하는 게 되는 일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단순한 행사라고 생각하지 않고 일주일에 세 번씩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다. 학생, 스태프, 실행위원으로 참여한 교수들이 모두 기도하는 동시에 죄인임을 돌아보는 본질에서 벗어나지 말자고 대화하며 행사를 꾸려나가고 있다.”

오스 기니스 박사가 2010년 4월 미국 UCLA(캘리포니아주립대학 로스앤젤레스 캠퍼스)에서 베리타스 포럼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베리타스 포럼 제공

-진리라는 단어가 퇴색한 시대. 이 시대에 진리를 어떻게 말해야할까.
“대학에서 진리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가 있다. 하버드대 서울대 고려대 등 여러 대학의 표어나 문장을 보면 ‘베리타스(Veritas)’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고려대 같은 경우는 ‘자유 정의 진리’를 말한다. 대학의 특성은 진리를 꼭 신앙적으로 고백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보고 듣고 말할 수밖에 없는 장소라는 것이다. 우선 베리타스 포럼은 대학 안에서의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학문과 신앙 영역의 구분에 관계없이 진리를 추구할 수 있는 곳이 대학이다. 성경이 말하는 진리, 대학이 추구하는 진리를 대화의 물꼬 안으로 가져오는 일을 꿈꾸고 있다. 진리에 다가갈수록 학문의 의미를 잘 발견할 수 있다는 자각이 중요하다. 학생들은 진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때 왜 공부하는지 의미를 깨닫게 된다. 진리에 다가설 때 생명력을 얻게 된다는 걸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비기독교인들에게 진리를 말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진 않을까.
“통역과 번역이 중요하다. 하늘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바꿔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담론을 초월적인 세계와 연결 짓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일까. 물론 CS 루이스 같은 학자들은 성경과 세상을 잇는 역할을 높은 수준으로 해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통섭, 학제 간 연구, 집단지성 같은 말이 나오는 것처럼 한 사람의 천재보다 사람 사이의 우정과 협업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떨까. 베리타스 포럼은 이런 측면에서 의미 있는 모델이다. 요즘에는 학문이 분절돼 있고 자기 분야에 갇혀있다. 총체적인 인간에 대한 이해를 말하지만 그 역시 자기 분야에서 독단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베리타스포럼을 통해 소통 가능한 언어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최소한 5~10년의 누적된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학자 과학자 생명과학자 철학자 등이 각자 학문 영역 위에서 진리를 말하며 대화하고 상호 우정이 쌓이면 좋을 것이다. 베리타스 포럼을 통해 이 같은 노력이 축적된다면 비기독교인들과 진리에 대해 대화하는 일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연속성이다. 한 번 멋지게 하고 마는 게 아니라 변화를 위한 지속적인 운동, 공부모임들이 대학 구성원들 사이에 일어나길 기대한다.”

-베리타스포럼이 그 가능성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세속화된 미국 대학가에서 베리타스 포럼이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미국 대학가에서는 베리타스 포럼을 통해 기독교인 학자와 비기독교인 학자가 진리와 관련된 주제로 치열하게 공부하고 다양한 대화를 한다. 이게 한국 대학에서도 잘 이뤄질 수 있을지 고민되는 부분도 있다. 일단은 이 과정을 잘 배우고 익힐 필요가 있다. 동시에 한국 사회가 처한 동아시아적 맥락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빌리 그래함, 팀 켈러, 톰 라이트 같은 외국 기독교 명사를 초청해 뭔가 될 것처럼 생각하진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실제로 한국의 지성인들에게 얼마나 임팩트가 있었을까. 결국 글로벌과 로컬의 조화가 필요하다. 서구의 학자들이 말하는 것과 한국 자생적인 학문 연구를 잘 조화시키는 게 중요하다. 한국 최초로 열리는 베리타스 포럼 고려대의 차별성은 형식은 원래 베리타스 포럼에서 가져오지만 내용은 한국적인 것을 담아내는 데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지속성을 가지는 동시에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대답한 것처럼 외국신학 운동을 단순 수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을 수 있는데.
“베리타스 포럼에 초청된 외국 기독교 명사들에게 한국에서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다 질문할 수도 없고 대답을 들을 수도 없다. 결국 한국판 CS 루이스를 계속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다음 베리타스 포럼의 이슈로는 동아시아 통일과 평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런 주제를 이번에 초청되는 오스 기니스 박사에게 물어서 답을 얻을 수 없다. 결국 우리가 스스로 고민하고 축적해야할 영역이 명확히 있는 것이다.”

-향후 베리타스 포럼의 방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일단 첫 모임에서 치열한 논쟁이 일어나길 기대한다. 기독교인들만 오는 게 아니라 대학 토론 동아리, 가나안 기독교인들도 함께 와서 대화하는 장이 될 수 있길 바란다. 후속 모임으로 다양한 공부모임을 만드는 방법도 구상하고 있다. 또 동아시아 인접국가인 일본과 중국의 대학가에도 베리타스 포럼이 생겨날 수 있도록 한국 베리타스 포럼이 좋은 영향력을 미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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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