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에 감동했던 2000·2007년… ‘결실’ 기대하는 2018년

입력 2018-04-26 12:03 수정 2018-04-26 14:32

4·27 남북정상회담은 모든 게 처음이다. 북한 지도자가 사상 처음 남쪽 땅을 밟게 되고, 비핵화를 처음 의제에 올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남측 기자들이 질문을 던지는 공동기자회견은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일이라 차라리 비현실적이다. 두 정상의 만남과 대화는 TV로 생중계된다.

이 네 가지 특징은 2000년·2007년의 1·2차 정상회담과 극명하게 달라진 점으로 꼽힌다. 과거 두 차례 정상회담의 또 다른 차이점은 이번 회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2000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은 만남 그 자체로 흥분을 줬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회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1년이 흐른 지금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은 조금 달라졌다. 감상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앉았다. 평창올림픽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논란에서 보듯 남북교류를 접하는 여론은 훨씬 현실적인 것이 됐다. 이번 정상회담을 보며 사람들이 기대하고 흥분하는 대상은 ‘만남’이 아니라 만남이 가져올 ‘결실’이다.

20년 넘게 한반도 정세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북핵’이란 용어가 마침내 서류철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는 상황. 2018 남북정상회담을 2000년, 2007년과 가장 뚜렷하게 차별화해주는 건 바로 이것이다.

◆ ‘평화’에 참여하는 시민 목소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25일 남북 학문단 구성을 요청하는 글이 올라왔다. 미국의 대학에서 북한학을 공부한다고 밝힌 청원인은 “대한민국 국적자는 북한 출입이 자유로운 외국인 연구자들에 비해 많은 한계에 부딪힌다”며 “최근 남과 북이 예술단을 꾸려 서로 소통했듯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학문단을 구성해 교류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청원인은 다양한 학문 분야의 남북한 연구자들이 교차 방문해 세미나를 여는 것은 물론 대학과 도서관에서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수준까지 교류가 이뤄지기를 희망했다. 남북한이 서로를 총체적으로 이해해야 정상회담 뒤의 민간교류가 더 깊이 있게 진행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현실적인 평화, 실질적인 결과물을 도출하기 위한 시민들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분출되고 있다. 남북한의 이산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평화마을을 비무장지대에 만들자는 청원도 올라왔다. “4000여명이 남아있다는 이산가족들이 짧은 만남만 아니라 더 늦기 전에 함께 살아갈 수 없을까”라며 “분단의 경계선이 만든 생태환경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남북한이 하나가 되는 평화의 작은 씨안 마을을 세우는 방안도 앞으로 진지하게 논의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통일부 주관으로 지난 17일 열린 ‘한반도의 봄, 청년들이 정상에게 바란다' 행사에 참가했던 김모씨는 김모(24)씨는 “당장 통일이 된다면 70년 넘게 떨어져 생활해온 남북한 시민들이 서로 융화될 수 있을지 누구나 걱정할 것”이라며 “통일에 앞서 다양한 방법으로 서로의 일상 생활을 체험하고 가치관을 살펴보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교환학생제도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남북한 청년들이 금강산과 백두산 정상에서 만나 남쪽의 치킨, 북쪽의 맥주를 나눠 마시는 치맥 회담을 열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시민들이 직접 정책을 제안하며 기대감을 표출하는 현상은 앞선 두 번의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평화협력원 황재옥 부원장은 “1차 정상회담은 북·미 제네바 합의로 1차 북핵위기가 해결된 상황에서 열렸고 2차 정상회담은 6자회담에서 북핵 협상이 진전되고 있던 때 진행됐다”며 “이번 회담을 앞두고도 남북관계의 극적인 전환과 평화교류를 바라는 기대감이 널리 확산되고 있다. 핵시설 폐쇄 등 북한이 보인 행동도 여기에 힘을 실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비핵화가 회담의 주요 의제가 되면서 한반도 평화 정착의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고 시민들의 참여의식이 높아진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윤인진 교수는 “촛불집회를 통해 부패정권을 심판하고 정권교체를 이뤄내면서 국민의 자기효능감이 많이 높아졌다”며 “이번 회담에서 종전 선언과 남북교류의 정례화 같은 평화정착을 위한 작업이 이뤄지길 바라면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상력이 앞선 제안들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통일부 관계자는 “통일의 당위성에 전 세대가 공감해야 통일이 이뤄질 수 있다”며 “시민이 제안한 아이디어가 북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고 판단되고 요청이 실제로 활발해진다면 정부는 충분히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 오전 9시30분 시작될 평화 여정

김정은 위원장은 27일 판문점 북측 지역인 판문각에서 내려와 오전 9시30분 군사분계선(MDL)을 넘게 된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역사적인 첫 만남을 시작한다. 이 장면은 남측 기자단이 월경해 전 세계에 생중계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사무실 T2와 T3 사이로 군사분계선을 넘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군사정전위원회 사무실 앞 군사분계선에서 김 위원장을 맞이하기로 했다. ​두 정상은 군사분계선에서 만나 우리 전통의장대의 호위를 받으며 공식 환영식장까지 도보로 이동하게 된다.

오전 9시40분쯤 자유의 집과 평화의 집 사이 판문점광장에 도착하면 의장대 사열을 포함한 공식 환영식이 열린다. 2000년과 2007년에도 평양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 당시 북측 육·해공·군 의장대 사열이 있었다.

이어 두 정상은 회담장인 평화의 집으로 이동한다. 1층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방명록에 서명하고 문재인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한다. 접견실에서 사전환담을 나눈 다음 2층 정상회담장으로 이동해 오전 10시30분부터 공식적인 회담을 시작할 계획이다.

오전 정상회담이 종료된 뒤 양측은 별도로 오찬과 휴식시간을 갖는다. 오후에는 남북 정상이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는 공동기념식수를 하기로 했다. 분단의 상징이던 군사분계선 위에
소나무를 함께 심는다. 기념식수 장소는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몰고 방북했던 군사분계선 인근의 ‘소떼 길’이다. 식수목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생 소나무다.

소나무 식수에는 한라산과 백두산의 흙을 함께 섞어 사용하고 식수 후에 김정은 위원장은 한강수를, 문재인 대통령은 대동강 물을 주게 된다. 공동식수는 남측이 제안했고, 북측이 수종과 문구 등을 모두 수락했다. 식수를 마치고 나면 군사 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두 정상이 친교 산책을 하면서 담소를 나눌 예정이다.

산책 후에 평화의 집으로 이동해 오후 회담을 이어가며 정상회담을 모두 마치게 되면 합의문 서명과 발표가 진행된다. 합의 내용에 따라 형식과 장소를 결정하기로 했다. 오후 6시30분부터는 양측 수행원이 참석하는 환영만찬이 평화의 집 3층 식당에서 열린다.

북측 공식 수행원은 모두 9명으로 확정됐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철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최휘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리수용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김여정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리명수 총참모장, 박영식 인민무력상, 리용호 외무상,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다. 남측 공식 수행원 명단에는 정경두 합참의장이 새롭게 포함됐다.

정상 간 ‘판문점 선언’에는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명시적인 문구가 처음 포함될 전망이다. 2007년 10·4 공동선언에서 북핵 6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 이행 노력을 명기하긴 했지만 당시 가속화됐던 6자회담 내용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방향을 새롭게 확인하는 내용이 공식 의제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을 견인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남북 정상회담은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는 첫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