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회항’ 사건 피해자인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이 25일 대한항공 본사 앞에 직접 나와 한진그룹 총수일가의 황제경영을 비판하고, 대한항공 경영진 퇴진을 촉구했다. 이 자리에는 특히 복직 이후 지속적으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온 사측 직원들이 대거 나와 현장을 지켜봤다.
박 전 사무장은 이날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앞에서 열린 정의당 정당 연설회에 참석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총수일가의 갑질과 황제경영을 규탄하는 자리였다.
마이크를 잡은 박 전 사무장은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로 촉발된 한진 총수일가들의 일상적인 갑질과 관세 포탈 등의 비리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2014년 매서운 겨울 바람이 휘몰아치던 뉴욕 한복판에서 오만 가득한 조현아에 의해 살점이 찢기는 인권 살해를 당했지만 살아남았다”며 “그러나 4년이 지난 후 가해자에게 면죄부가 주어졌고, 2018년 동생 조현민에 의해 그들의 만행이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박 전 사무장은 “대한항공 노동자들은 흔들리는 비행기 객실 안에서, 폭풍우 속 조종간을 잡아야 하는 조종실 안에서, 화장실 가는 것도 허락받아야 하는 티켓팅 데스크에서, 기름 범벅의 정비창고에서 대한항공 발전을 위해 고군분투했다”며 “하지만 서비스산업의 가장 기본인 인간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경영자들에 의해 우리는 수치의 시간을 겪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 사태의 해결방안을 세 가지 말씀드린다”며 ①권한만 향유하고 책임은 안 지는 현 경영진 즉각 퇴진 ②대한항공 노조가 직선제를 도입해 내부 견제시스템을 정상화할 것 ③필수공익사업장 제도 재점검을 주장했다. 총수일가와 경영진의 문제 외에도 총수일가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운 노조가 필요하고, 사기업인 대한항공이 공공기관처럼 운영돼 노동자들의 권리가 침해받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2010년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된 대한항공은 노동쟁의 때도 국제선 80%, 국내선 50%를 의무적으로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그를 감시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수십명의 대한항공 직원들이 참석자들을 면밀히 지켜봤다. 대한항공 사원증을 목에 건 이들은 박 전 사무장의 발언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촬영했다. 이를 본 박 전 사무장은 연설회 말미에 다시 마이크를 요청했다. 그는 “저 뒤에 지속적으로 저를 감시한 객실 내부 노무담당자가 있다”며”하실 얘기가 있으면 나와서 하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이게 대한항공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박 전 사무장은 최근 인스타그램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땅콩 회항’ 사건을 겪고 복직한 후에도 지속적인 내부 ‘뒷담화’와 사측의 괴롭힘이 있었다고 폭로한 바 있다. 그는 “면세품 판매 업무를 맡았을 때 몸 상태가 최악이어서 후배들에게 사정을 말하고 도움을 받았는데 다음날 블라인드 앱에 ‘일하기 싫어 주니어 승무원에게 일을 떠넘겼다’는 글과 함께 악플이 달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측이 저를 감시하고 유언비어를 유포한 증거”라며 “회사 노무팀에서 한 후배에게 ‘박창진 흠이 될만한 게 없느냐’고 캐물었다는 얘길 들었다”고 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