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남북정상회담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25일 문재인 대통령의 일정표는 비어 있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늘 대통령 일정은 없다. 정상회담 준비에만 집중한다”고 말했다. 외부 일정과 공식 일정을 모두 배제한 채 청와대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판문점 담판’을 세밀히 구상하며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다. D-1인 26일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D-2 행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문 대통령보다는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은 북한에서 벌어진 중국인 교통사고 사망 사건을 수습하는 데 직접 나선 상태다. 노동신문 등 북한 주요매체는 전날 김 위원장이 병원에 입원한 중국인 피해자를 찾아가 위로하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도했다.
◆ 文대통령 ‘생각하는 하루’… 靑 “회담 순조로울 것”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정상회담 준비에 집중한다”면서 하루 종일 청와대에 머물게 된다고 밝혔다. 내부적인 회담 예행연습 방법 등은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정상회담에서 남북 간 합의가 순조롭게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했다. 회담 D-2에 매우 낙관적인 관측을 내놓았다.
이 관계자는 ‘(판문점 선언 등을 위한) 남북 간 합의가 잘 이뤄지고 있나’라는 질문에 “순조롭게 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서울과 평양에 남북연락사무소 설치를 제안했나' ‘평화체제·관계개선 의제는 실무회담에서 조율됐고 비핵화 문제는 정상회담에서 논의하나' 등의 질문에는 "하나하나 설명하기 곤란하다"고 답했다.
‘고위급 회담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가 북한 측이 피하기 때문인가'라는 물음에는 "회담 결과를 보면 알 것"이라며 “추가적인 고위급 회담이 안 열린다면 별 문제가 없기 때문”이라는 전날의 발언과 같은 취지로 답했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도출될 정상선언(판문점 선언)은 회담 당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담판을 통해 완성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청와대 측은 “두 정상이 직접 만나 대화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거듭 말해 왔다. 정상 간 공식 만찬 도중 합의 내용을 발표했던 2000년 6·15 공동선언 사례가 재현될 가능성도 크다.
문 대통령은 지난 22일 최종 점검 회의를 소집해 의제를 조율했다. 우리 정부안은 상당부분 완성됐다고 한다. 하지만 비핵화 논의를 비롯해 과거 정상회담에 비해 의제가 광범위해 여러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문 대통령이 회담 준비에 몰두하는 것도 직접 감당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으로 관측된다.
정부 관계자는 24일 “6·15 공동선언은 평양에 가서야 합의가 도출됐고, 10·4 공동선언은 사전 합의가 됐음에도 막판에 내용이 수정됐다”며 “판문점 선언의 경우 과거보다 의제가 많아 사전에 조율을 끝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남북정상회담 의제에 대해 “지난달 29일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1차로 논의한 후 협의를 진행해왔다”며 “고위급회담이 열리면 의제에 대해 좀 더 진행할 수 있고, 열리지 않는다면 정상회담에서 바로 의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식적인 추가 논의 없이 회담장에서 담판이 이뤄질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 김정은의 D-2… ‘북·중 관계’ 직접 챙기기
최근 북한에서 발생한 중국인 관광객 교통사고 사망 사건에 대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발 벗고 나섰다. 최근 회복된 북·중 우호관계에 이번 사건이 악재가 되는 것을 차단하고, 오히려 상호 신뢰를 돈독히 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이 지난 23일 오전 6시30분 북한 주재 중국대사관을 방문해 사고에 대해 위로의 뜻을 표하고 “최대의 성의를 다해 후속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24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같은 날 저녁 부상자들이 입원한 병원도 찾았다. 노동신문은 이날 1면에 김 위원장이 침통한 얼굴로 리진쥔 북한 주재 중국대사와 대화하는 모습, 흰색 가운을 걸치고 병실을 찾아 부상자를 위로하는 장면 등 사진 4장을 게재하는 등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리 대사에게 “가슴이 아프다. 유족의 마음의 상처를 위로하기 위해 최대한의 성의를 다해 대응할 것”이라고 약속했고, 리 대사는 “김 위원장이 북·중 우호관계를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지 재차 실감했다”고 답했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행보는 대단히 이례적이다. 직접 병원에 찾아가고 직접 중국 대사를 만나며 사고 수습을 위해 뛰어다녔다.
이는 코앞에 다가온 남북정상회담과 이어질 북미정상회담 등 일련의 외교무대에서 김 위원장이 중국의 역할을 상당히 기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회담 준비에 전력을 쏟는 것만큼이나 애써 복원한 중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본 NHK방송은 “북한 언론이 김 위원장의 외국 대사관 방문이나 외국인 부상자 문병을 보도하는 것은 이례적인 것”이라며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중시함을 강조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앞서 지난 22일 오후 6시쯤 황해북도에서 중국인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전복돼 중국인 32명과 북한 주민 4명이 사망하고 중국인 2명이 다쳤다.
시 주석도 사고 직후 북한 주재 중국대사관에 “즉각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북한 유관당국과 협조해 전력으로 사고 수습 업무를 잘 처리하라”고 지시하는 등 이번 사고에 극도로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