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쓰면 못난이? 왜 우리는 안경 쓴 여성을 터부시할까?

입력 2018-04-24 16:34
사진=MBC '뉴스투데이' 방송화면

사회의 분위기나 종교적인 맥락에 의해 사람들이 피하고 엄격히 금지하는 것. 터부(Taboo)의 의미다. 지난 12일 안경 낀 임현주 MBC 앵커가 공중파에서 뉴스를 진행하고, 제주항공이 승무원의 안경 착용을 허용하면서 우리가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던 금기가 깨졌다.

안경은 현대에 매우 보편화된 도구다. 그런데 그것을 쓰고 여성 앵커가 뉴스 진행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화제가 됐다. 그동안 여성이 안경을 끼고 방송을 하는 것은 암묵적으로 금기시되던 일이다. 이는 여자 아나운서의 잘 단장된 외모를 중요시하고 안경을 쓰는 것이 외모를 덜 꾸민 상태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임 아나운서는 자신의 SNS를 통해 “매일 렌즈를 끼느라 인공눈물을 달고 살아 눈이 아팠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관행에 물음표를 던지고 싶었던 것”이라고 안경을 쓴 이유를 밝혔다. 이어 올린 글에서는 “안경을 쓰든 쓰지 않든 그것이 더 이상 특별하게 시선을 끌거나 낯설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도 했다.

사진=MBC '뉴스투데이' 방송화면

드라마에서 외모가 뛰어나지 않던 여주인공이 예쁘게 변신하는 설정이 나올 때, 안경은 꼭 등장하는 아이템이다. 안경을 썼던 여주인공이 안경을 벗으면 남자주인공이 깜짝 놀라 넋을 잃고 바라보는 설정은 꽤 자주 등장한다.

이런 ‘클리셰’를 통해 안경과 여성의 외모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안경을 쓰지 말아야 예쁘게 잘 꾸민 여성이라는 인식과 안경 쓴 것이 외모 관리에 무성의한 것으로 간주하는 편견 말이다.

◆ 제주항공, 객실 승무원에 안경 착용 허용

사진=제주항공 제공

방송계에 이어 항공업계에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제주항공이 국내 항공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여성 승무원의 안경 착용을 허용한 것이다.

지금까지 기내에서 안경을 쓴 승무원은 보기 어려웠다. 원래 객실 승무원의 안경 착용을 금지하는 규정은 없었다. 단 관행에 따라 콘택트렌즈를 착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제주항공은 승무원의 근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이런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이 같은 서비스규정 변경은 감정노동의 대표적인 직군 중 하나인 객실승무원에게 수많은 제한사항을 둠으로써 느끼는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줘 즐겁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에 따른 것이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야간비행이나 눈이 충혈된 상태에서 억지로 콘택트렌즈를 끼고 비행에 나서는 객실승무원이 의외로 많다”며 “참아가며 하는 서비스보다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즐겁고 행복한 상태에서 하는 객실 서비스가 승객에게 더욱 의미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 직장인 16% ‘안경 쓴 여직원’에 눈치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지난 23일 취업포털 커리어에 따르면 직장인 55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0%가 ‘회사에 안경을 쓰고 출근하는 여직원이 적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적은 편이다’ 39.9%, ‘거의 없다’ 20.1%로 나타났고, ‘많은 편이다’ 28.8%, ‘매우 많다’ 11.2% 순이었다.

‘회사에서 여직원에게 렌즈 착용을 요구하고 안경을 쓰면 눈치를 준 적이 있나’라는 질문에 ‘있다’라고 답한 직장인도 15.8%였다. 이들에게 구체적인 내용을 묻자 주로 ‘안경을 쓰면 외모에 대해 지적한다(75.9%, 복수 응답 가능)’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회사에서 안경을 끼지 말라는 규제는 없지만 암묵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탓에 안경을 착용한 여성 직원들에 대한 부정적인 분위기가 존재했다.

임 아나운서와 제주항공이 안경을 내려놓음으로써 ‘구체제’에 작은 균열을 생겼다. 이런 작은 변화가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여성들이 건조한 눈에 인공눈물을 넣어가며 억지로 렌즈를 끼고 살아가는 관행은 조금 흔들리게 됐다. 우리가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금기시하는 일들이 또 어떤 변화를 맞게 될지 주목된다.

신혜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