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만찬이 통일을 위해 힘쓴 국내 인사들의 자취가 묻어나는 음식으로 꾸며지게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부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방북사건’까지 남북 화합을 상징하는 사건들이 만찬 테이블 곳곳에 깃들 예정이다.
청와대는 24일 오후 “남북회담 환영 만찬은 우리 민족의 평화 통일을 위해 애쓰셨던 분들의 뜻을 담아 준비했다”면서 “고향과 일터에서 먹을거리를 가져와 정성스러운 손길을 더했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정 명예회장, 윤이상 작곡가와 관련된 메뉴들이다.
김 전 대통령은 전남 신안 출신이다. 이곳에서 나는 민어와 해삼초를 이용해 만든 ‘민어 해삼 편수’가 만찬 음식으로 선택됐다.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한국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해 6월 15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첫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며 6·15공동선언에 합의하는 등 북한과의 평화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20일 구축된 남북 직통전화 ‘핫라인’도 김 전 대통령 때 처음 만들어졌다. 다만 이번처럼 두 정상이 직접 통화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라 국가정보원과 북측 통일전선부를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는 형식이었다.
밥은 노 전 대통령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오리농법으로 수확한 쌀로 짓는다. 노 전 대통령도 김 전 대통령에 이어 2007년 김 국방위원장과의 두 번째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소떼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었던 이북 출신 정 명예회장의 소망도 만찬 테이블에 구현된다. 정 명예회장은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며 1998년 6월과 10월 소 1001마리와 방북했다. 당시 한 프랑스 문화비평가는 “20세기 마지막 전위 예술”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정 명예회장이 소떼를 몰고 올라간 충남 서산목장 한우를 이용해 만든 숯불구이로 만찬을 꾸민다”고 설명했다.
윤 작곡가는 최근 평양에서 공연을 가진 남한 예술단의 원조 격이다. 1990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범민족통일음악제’의 준비위원장으로 일하며 남북 합동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7년 뒤 ‘윤이상 통일음악회’도 열었다. 윤 작곡가의 고향인 경남 통영의 명물, ‘문어 냉채’도 만찬 테이블에 오른다.
경남 거제 출신인 문 대통령의 고향 음식 달고기구이는 몸 옆쪽 가운데에 둥근 반점이 있는 바닷물고기 ‘달고기’로 만든다. 청와대가 김 국무위원장이 스위스에서 유학한 점을 고려해 선택했다고 전한 감자전은 ‘뢰스티’를 우리식으로 재해석한 메뉴다. 스위스의 대표적인 가정식 요리이며 생감자나 익힌 감자를 갈아 둥글게 부친 것이다. 문 대통령과 김 국무위원장이 한자리에 앉아 서로의 추억이 깃든 음식을 맛보게 된 셈이다.
주요 만찬 메뉴인 평양 옥류관 냉면은 문 대통령의 제안을 북측에서 수락해 선정됐다고 한다. 북측은 정상회담 당일인 27일 옥류관 수석요리사를 판문점에 파견하고 제면기를 설치할 예정이다. 만찬 술로는 진달래 꽃잎과 찹쌀로 담그는 ‘두견주’와 고려 시대부터 천년을 이어왔다고 알려진 ‘문배술’이 꼽혔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