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 ‘심청가’의 두 주인공 민은경-이소연 인터뷰
극보다는 창에 초점을 맞춘 창극 속으로 흠뻑 빠지고 싶다면. 우리 소리는 좋아하지만 4~6시간 길이의 완창판소리를 듣기에는 부담스럽다면. 오는 25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하는 국립창극단의 ‘심청가’가 좋은 선택일 수 있다.
이 작품을 맡은 손진책 연출가가 소리를 제대로 들려줄 적임자로 찾은 이들은 국립창극단 소속 배우 민은경(36)과 이소연(34)이다. 최근 이 둘을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만나 공연을 앞둔 소감과 심청가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들어봤다.
어린 심청을 맡은 민은경은 인당수에 빠져 용궁에서 어머니와 만날 때까지를 연기한다. 황후 심청을 맡은 이소연은 심봉사가 눈을 뜨는 마지막 대목까지 연기한다. 두 배우가 한 작품에서 한 인물을 나이와 상황에 따라 나눠 맡게 된 것이다.
민은경은 심청과 유난히 인연이 깊다. 2006년 창극 ‘십오세나 십육세 처녀’에서 심청을 처음 연기했다. 지난해 초에는 완창판소리 ‘강산제 심청가’를 올렸고 말에는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에서도 심청을 맡았다. “체구는 작고 왜소하지만 다부진 성격이 어린 심청에 어울린다고 봐 주신 것 같아요. 이소연 배우와 나눠서 하다 보니 심청이 더 어른스럽게 바뀌어 나온다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민은경)
이소연은 2013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한 뒤로 이번에 처음으로 심청을 연기한다. “심청으로 캐스팅될지 몰랐어요. 성숙한 이미지가 있어 황후 심청으로 선택하시지 않았을까요. 민은경 배우는 동안이고 단단한 느낌이 있잖아요.”(이소연)
두 배우가 보여주려는 심청은 다르다. “너그럽고 자비로우면서도 소신 있는 황후랄까요. 소리꾼이 이야기를 풀어내듯 하려고 해요. 소리를 어떻게 맺고 끝내는지, 어떤 느낌으로 부르는지에 따라 성격이 다르게 느껴지거든요.”(이소연)
“어린 심청의 감성을 살리고 싶어요. 얼마나 무섭겠어요. 겉으로는 공양미 300석을 구해 아버지를 구할 수 있다면서 담담해 보이잖아요. 하지만 속으로는 두렵고 만감이 교차할 거예요. 그런 내면을 표현하는 데 주력하고 싶어요.”(민은경)
심청가는 창‘극’이 아닌 ‘창’극이다. 극의 요소보다 창의 요소가 강하도록 차별화했다. 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요소를 최소화했다. 소품과 조명, 무대 기법, 배우의 수까지도 줄였다. 배우들이 다른 외부 환경보다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소리꾼이 소리 하듯 창극을 선보이다 보니 배역을 나눠도 한 명이 풀어내는 느낌마저 들 수 있다. 또 국립극장을 벗어나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을 올리면서 장소에도 변화를 줬다. 두 배우는 여느 창극과는 다른 변화에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창극은 그동안 순회공연이나 특별공연이 아니면 국립창극단에 와야 볼 수 있었죠. 다른 극장에서 공연하는 설렘이 커요. 명동은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잖아요. 창극 팬뿐 아니라 다른 관객도 보러 오실 기회죠. 심청가는 우리 전통의 소리라서 오고 가는 외국인도 많이 관심 가질 것 같아요.”(민은경) “오랜만에 소리에 푹 빠질 기회라서 기대돼요. 배우들도 무대에서 다 같이 감상하는 게 있어요. 배우가 아닌 관객이 되기도 하죠. 소리에 목말라하는 관객은 ‘진짜 창극’을 본다는 느낌을 받을 거예요.”(이소연)
설렘뿐 아니라 우려와 고민도 있을 법하다. “이번 ‘심청가’가 더 예술성이 있고 덜 대중성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소리의 맛을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궁금해요. 또 나눠 하다 보니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걸 보여줘야 한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해요. 극은 후반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낯선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해요.”(이소연) “사실 성격이 정말 활발하고 밝은데요. 심청가는 감정이 복합적이고 기복이 크기 때문에 힘들어요. 감정의 격해짐을 소리로만 다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어요.”(민은경)
꼭 말을 해야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대사가 아니더라도 소리 눈짓 표정 동작으로 메시지와 심정을 전할 수 있다. 심청가가 소리에 그토록 공들이는 이유다. 특히 심청가는 감정과 상황 변화가 판소리 다섯 바탕 중 가장 많은 편이다. 줄거리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감정을 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감정이 와 닿아요. 늦둥이여서 아버지 연세가 많으세요. 늘 아버지 걱정을 많이 하면서 자라다 보니 몰입도가 훨씬 크더라고요.”(민은경) 심청처럼 늦둥이고 아버지와 관계가 돈독해 심청가에 애정이 많다고 전했다. “심청가는 소리꾼들이 이야기가 재밌고 구성이 잘 짜인 소리라고 해요. 희로애락의 감정을 쏟아내듯이 표현해내죠. 한이 서린 소리도 많이 있어요. 소리를 하기에 재밌고 좋아요.”(이소연)
두 배우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뭘까. 이소연은 아버지가 눈 뜨는 순간을 백미로 꼽았다. “소리꾼이 극을 계속 이끌어오다가 마지막에 아버지가 눈뜰 때 쌓인 감정이 터져요. 시원한 감정이 들어요.”(이소연) 민은경은 ‘눈 어둔 백발 부친’을 꼽았다.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기 전 아버지가 혼자 살 수 있도록 집을 정리하는 내용이다. “상상하면 눈물을 참기 어려워요. 아버지를 혼자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심정을요.”(민은경)
심청가가 국립창극단의 판소리 다섯 바탕의 마침표를 찍게 되면서 각오가 남다르다. 심청가는 기본 토대로 활용한 사설이 강산제 심청가를 이어받은 고(故) 성우향 명창의 것이다. “성 명창이 제 선생님이에요. 20년 넘게 배운 스승님 소리라서 더 애정이 가고 책임감이 들어요.”(민은경) “다른 것보다 소리를 제대로 들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황후가 된 심청의 모습을 소리 안에서 제대로 펼쳐봐야죠.”(이소연)
다음 달 6일까지 명동예술극장. 2만~5만원.
권준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