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디테일에…” 6년 전 했던 말 다시 꺼낸 文대통령

입력 2018-04-23 09:12

제18대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이던 2012년 11월 8일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을 했다. 민주당 지역위원장 회의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를 두고 한 얘기였다. 당시 문 후보는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를 하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단일화의 절차와 방법에 대한 협상이 시작되던 시기에 문 후보는 “디테일”을 말했다. 큰 틀이 합의됐어도 구체적 협의 과정에서 암초를 넘지 못하면 단일화는 좌초한다는 뜻이었다.

6년이 흘러 문 후보는 대통령이 됐고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있다. 문 대통령은 첫 번째 대선 도선 때 했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을 다시 꺼냈다. 지난 12일 남북 정상회담 원로자문단과의 오찬간담회에서 그랬고, 19일 언론사 대표단 간담회에서도 이 말을 했다. 남·북, 북·미, 남·북·미 사이에 원론적 합의는 충분히 가능할 텐데 문제는 구체적인 절차와 방법을 도출해 비핵화의 실질적 이행을 이루는 데 있다는 뜻이었다.

“비핵화라든지, 비핵화가 될 경우 평화체제를 구축한다든지, 북·미 관계를 정상화한다든지, 이 경우 북한의 경제발전을 위해 국제적으로 돕는다든지 하는 큰 틀의 원론적인 합의는 크게 어려울 것 같지 않다. 다들 염려하시는 바와 같이 과연 그 목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방안들은 쉽지 않다. 과거의 방안을 되풀이할 수도 없고 새로운 방안을 찾아야 한다… 어쨌든 우리가 ‘디테일의 악마’를 넘어서는 게 가장 큰 과제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언론사 대표 간담회 발언)

문 대통령이 말한 ‘쉽지 않은 디테일’은 비핵화의 단계별 시기와 방법, 경제 지원의 개시 조건, 지원의 방식 등 남·북·미 사이에 논의될 모든 의제에 도사리고 있다. 그것이 어느 한 대목이라도 삐끗하면 ‘악마’로 돌변해 큰 틀의 합의마저 흔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도 “북·미가 비핵화에 확실한 공감을 이뤘기에 북미정상회담이 구체화된 것”이라면서도 “비핵화 이행 시기와 방법 등 구체적 사안은 북·미 정상이 풀어야 할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6년 전 ‘디테일의 악마’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2012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부터 그는 ‘후보 단일화’를 공언했다. 속마음을 솔직히 내보이고 문제를 풀어가는 문 대통령의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났다. 문 후보 진영과 안철수 후보 진영의 수 차례 대화, 문 후보와 안 후보의 만남을 통해 야권 후보 단일화를 하자는 공감대가 이뤄졌고 발표까지 했다. 하지만 이후 단일화 방법론을 둘러싸고 지루한 협상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아름다운 단일화’는 결국 무산됐다. 양측 사이에는 오히려 깊은 감정의 골이 패였다.

디테일의 악마를 넘어서지 못한 채 안철수 후보의 일방적인 사퇴로 ‘반쪽 단일화’가 성사되긴 했지만 대선은 야권의 패배였다. 문재인 후보는 간발의 차이로 박근혜 후보에 밀렸고, 그렇게 출범한 박근혜정부는 5년을 지속하지 못했다. 사상 첫 탄핵 대통령이 됐다. 사상 첫 조기 대선을 치러야 했으며 국가와 국민은 큰 상처를 입었다. 이를 회복해가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스스로 짊어졌다. 그리고 다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최종 점검회의를 소집했다. 회담 의제에 집중한 회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오후에도 청와대에서 정상회담 전 마지막 수석비서관·보좌관회의를 주재한다. 그동안의 정상회담 준비 과정을 평가하고 마지막까지 철저한 준비를 당부하는 메시지를 내놓을 전망이다. 이 자리에서도 ‘디테일의 악마’를 넘어서기 위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