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마샤로먼의 원작 ‘Getting Out’ 겟팅아웃(연출 이주아)이 극단 <새가판다> 창작집단 <동네한바퀴> 공동작업으로지 후암스테이지 1관(4월4일~15일까지)에서 공연됐다. 관객과 예술인이 다 함께 소통하는 공연을 만들자는 취지로 2016년에 창단 된 극단 <동네 한 바퀴>는 <선영아, 사랑해 참 오랜만이야>, < 브레히트의 악한여자들- 그루쉐 VS 센테) 등 창작극과 원작을 해체해 동시대로 연결하려는 젊고 실험적인 작업들을 시도해 오고 있다.
극단 <새가 판다는>는 공동 창작 작업을 기반으로 고전 작품부터 창작 작품까지 새로운 시선으로 상징적인 무대를 표방하고 있다. 이주아는 오페라 연극 <맥베스>, <겨울 나그네> 뮤지컬 <특종>, <로미오와 줄리엣>, 연극< 수상한 수업>등을 연출했다.
국내무대에서도 친숙한 작가 마샤로먼은 사회로 부터 격리 되고 결핍된 여성의 내면성을 다루어왔다. 타자와 사회, 가족으로부터 손상된 여성의 내면은 일탈·분노·폭력·불안·우울·저항·자살로 이어진다. 대표작 <잘자요 엄마>(1983)는 극중 인물 딸 제씨(Jessie)의 자살 충동과 엄마 델마(Thelma)와의 심리적인 갈등을 그린 작품으로 그해 퓰리쳐상을 수상해 작가의 성공작품이 됐다.
<잘자요 엄마>는 딸의 자살 선언 계기로 엄마 델마(Thelma)와 제씨가 각자 삶에 대한 의미를 찾아가며 치유해 나가는 극으로 서로에 대한 공감과 이해 과정을 그린작품이다. 노먼은 주인공인 제씨를 간질병환자로 설정해 극한의 상황 속에 놓인 인간의 무기력함과 좌절을 상징적으로 그려 낸다. 제씨의 삶은 간질이라는 자유로움이 부재한 신체적 억압으로 단절되어 사회와 인간관계는 극도로 제한된다. 제씨 삶의 고립과 분노는 자의식의 결핍으로 들어나고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모녀는 제씨의 자살 선언 계기로 상실된 내면을 회복해 나가는 작품이다.
‘Getting out’ (1977)는 출소란 의미로 살인죄로 복역하다 가석방 되어 살아가는 한 여인의 이야기다. 각색된 작품은 된 개명 전 과거 정미의 손상된 내면을 바라보며 단절할 수 없는 기억을 소환한다. 연극은 개명 후(정화) 새 삶을 살아가려는 그녀의 내면을 과거(정미)와 현재(정화)를 중첩시키며 불편한 시선과 과거의 존재, 씻어낼 수 없는 기억들을 연결한다. 배우로 참여하고 있는 황선영 , 이다아야가 각색해 배경과 인물을 한국사회로 옮겼다.
친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파괴된 정미의 자아(自我)는 청소년 시기 일탈과 방황, 폭력적 성향으로 자라나고 도발적인 문제아로 성장한다. 극중 인물 뽕쟁이포주(갈태)와 성매매로 살아가다 뜻하지 않는 아들을 낳게 되고 폭력적 성향으로 교도소에서도 ‘588’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정미의 폭력성은 저항으로 들어나게 된다. 과거 기억을 지워 버리기 위해 이름을 정미에서 정화로 개명한 뒤에도 지워 낼 수 없는 과거는 온전한 삶의 살점으로 회복이 불가능 한 채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정미’이야기다.
불편한 시선... 존재와 기억
무대는 간결하다. 무대 좌측은 개명 전 정미 과거기억이 진행되고 중첩되는 교도소 공간이다. 우측은 8년 만에 가석방 후 사화적응을 위해 부산에서 방 하나를 얻어 살아가는 공간으로 분리되고 앞쪽은 싱크대와 냉장고가 전부다. 현재 극중 인물 정화(황선영 분)에게 가족이 살고 있는 부산과 아들을 향한 집착은 혈전 된 과거기억을 깨고 성폭행 이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손상된 자아를 찾아가려는 욕망이다.
극은 과거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정화의 과거를 중첩과 분리된 공간으로 이원화 시키고 때로는 두 내면을 소환해 마주보기를 한다. 교도관(주연우 분)과 살림살이를 부산으로 옮겨온 정화는 교도관의 이중적인 집착(교도소에서는 정미를 향한 폭력성가 집착을 들어내고 정년퇴임 후 정화와 살고 싶어 한다)을 통해 정화의 기억은 과거로부터 재생된다. 교도관의 폭력이 장면으로 중첩되고, 정화는 덜어낼 수 없는 과거기억과 마주한다.
무대에서 재생되고 있는 과거 정미의 삶은 현재 내면과 분리될 수 없는 동일한 자아의 풍경이며, 과거로부터 단절되고 분리될 수 없는 바라보기다. 친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뒤 고등학교 때부터 소년원을 들락거린 정미 내면은 사회를 향한 분노와 일탈, 불안, 우울성과 가학적인 폭력성을 드러낸다. 탈옥 하려고 불을 지르고 욕설과 퇴폐의 일상성을 보이는 정미의 내면(과거)은 인간에 대한 애정과 타자의 결핍성을 들어내며 회복 될 수 없는 상태로 전이된다.
연출은 정미의 폭력적 내면성을 사회로 확장하기 위해 감정의 음폭을 넓힐 수 있는 마이크를 사용하고 정미의 분노의 감정과 폭력성을 관객이 불편해 질 수 있도록 장면을 구성한다. 마치 정미의 폭력성을 마주한 불특정 다수의 관객에게 정미의 손상 된 내면과 폭력적인 분노의 욕망을 거칠 게 들어냄으로써 가해책임을 타격하는 식이다.
정미가 과거를 보듬고 치유 할 수 있는 구원은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뿐이며, 교도소에서 목사가 선물해준 예수액자가 전부다. 정화는 “정미는 나에게 혐오스러운 자아이고, 그래서 상처를 입힌다. (중략) 주님께서 정미를 데려가 새로운 길을 인도 하실 거라고, 주님 뜻으로 내가 온순해 질수 있다고.” 과거의 치유는 자신의 내면을 향한 주술적인 최면(催眠)만이 유일하며, 현재(정화)존재는 과거기억과 단절 할 수 없는 현재로 중첩된다.
과거 정미를 대하는 교도관의 폭력성과 정년 후 정화와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이중적인 욕망은 한국사회 불안전한 제도를 환기시키며 편견된 사회시선으로부터 더욱 고립될 수밖에 없는 현실성을 들어낸다. 결핍되고 손상된 자아를 봉합하고 치유할 수 있는 가족은 또 다른 피해자로 설정된다. 정화의 집을 방문한 엄마(정란희 분)도 온전한 품으로 정미를 보듬지 못한 채 불안전하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과거 성폭행 사건의 기억을 남편으로 분리하고 있는 엄마도 정신적인 분열성을 보인다. 소녀원을 들락거린 과거 정미와 동생, 가족의 일탈적인 행동 과 붕괴들을 자신으로부터 독립시킴으로써 가족의 균열과 갈등을 엄마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갈등과 자아의 결핍이 온전하게 거세 되지 못한 시선과 환경에서 정화의 과거는 동일한 자아로 형성될 뿐이다.
작품도 이러한 자아정체성의 부재와 혼란스러운 내면들을 과거-현재의 공간으로 중첩시킨다. 과거 정미를 여전히 마주 보게 함으로써 현재-과거의 결핍된 내면을 분리하지 않는다. 여전히 과거 기억에서 정화는 고립되고 존재 될 뿐이다. 과거를 단절하고 새 삶으로 살아가려는 정화에게 갈태의 등장과 유혹, 불편한 시선들의 존재는 과거로 돌아 갈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를 형성시킨다.
갈태는 여전히 정화에게 해외원정을 떠나 성매매를 하면 돈을 벌수 있다고 유혹하고 정화 또한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정화가 과거의 정미 내면을 향해 “정미야 너 거기서 뭐하는 거니?” 할 정도로 고립된 과거를 꺼내 올 리고 싶지만 불편한 시선들이 존재 하는 현상에서 과거 정미는 치료 될 수 없으며 지워지지 않는 현재를 살아갈 뿐이다. 구원해 줄 수 있는 희망은 여전히 부재하고 불편한 시선들만이 정화의 삶에 동행 할 뿐이다.
이번 작품은 각색이 한국사회로 옮겨지면서 (정미)과거와 현재(정화)를 연결하는 기억의 회상과 갈등을 환기 시키는 정도로만 스쳐간 듯해 서사가 느슨해 졌고 기억에만 고립되어 있는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배우들이(황선영, 이다아야, 정란희) 작품을 몰고 가는 열기가 작품 끝까지 시선을 보내도록 했다. 특히, 다역(현석·갈태·교도관)을 한 주연우는 다양한 인물을 표현하면서도 연기흐름이 매끄러웠다. 인물의 폭을 넓히면 앞으로 기대되는 배우다.
▶이번 작품은 무대/ 김도현, 조명/곽두성, 음악/신상덕, 디자인/ 이지민, 촬영/김인식, 음향오퍼/한초롬, 진행/이숙진, 조명오퍼/ 김민식이 참여했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