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유튜버가 택시기사에게 폭력을 휘두른 여성 A씨 일행을 말리는 과정에서 되레 폭행 가해자로 지목됐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상에선 ‘선한 사마리아인 법’ 논쟁이 불붙었다.
운동을 전문으로 유튜브채널을 개설한 닉네임 ‘뽀종’은 지난 21일 경남 창원 마산에서 발생한 폭행 사건의 일화를 전했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채널로 구독자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가 주장한 상황은 이렇다.
그는 대구 일정을 마치고 자정쯤 마산에 도착해 택시를 타는 과정에서 택시기사를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는 A씨를 발견했다. 그는 가방과 짐을 내려놓고 A씨를 말렸다. A씨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택시 안에 타고 있던 남성 B씨는 밖으로 나와 뽀종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뽀종은 “B씨를 말리기 위해 양팔로 껴안았다”며 “평소 운동을 했기에 B씨의 겨드랑이와 목을 꽉잡아 말렸다”고 밝혔다.
A씨는 이 상황에 가세했다. 뽀종은 A씨로부터 눈과 입술 부위를 공격당했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입술 부위와 얼굴에 멍이 들었고 허리부상도 입었다고 호소했다. 뽀종은 A씨와 B씨의 신원을 구체적으로 알리지는 않았다. 모두 뽀종의 주장이다. 하지만 뽀종과 그의 구독자가 가장 문제를 삼은 부분은 폭행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말린 결과에 있었다.
뽀종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쌍방 폭행’의 가해자로 지목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B씨를 붙잡은 행위가 싸움을 말린 행위에 해당하지 않아 쌍방 폭행이라는 말을 경찰 조사 과정에서 들었다”며 “2대 1로 구타를 당하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지도 않았다. 한 대도 때리지 않았는데 억울하다”고 말했다.
뽀종에게 불리한 목격자 진술도 나왔다고 했다. 뽀종은 “A씨와 B씨를 말리는 과정에서 눈을 찔려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며 “그러나 바라보기만 하고 도와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뽀종은 자신의 부상 부위를 유튜브에 공개했다. 양쪽 눈에 부상을 입어 치료 중이라고도 주장했다.
◆‘선한 사마리아인 법’이란?
선한 사마리아인 법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외면할 경우 징역이나 벌금을 부과하는 법률 조항을 의미한다. 성서에서 누가복음에 나오는 사마리아인(팔레스타인 사마리아 부근에 살던 민족)의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한 사마리아인이 강도를 당한 행인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정성껏 돌봤다는 내용이다.
한국에서는 선한 사마리아인 법은 법제화되지 않았다. 다만 제한적으로 형법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보호할 법률상 혹은 계약상 의무가 있는 사람에 대한 책임, 경범죄처벌법에서 자기가 관리하는 곳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한 관리상의 책임 등을 규정하고 있다.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관련자에 한해서만 규정을 두고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 법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여러 논쟁을 촉발하고 있다. 응급·위급한 타인을 구조할 의무를 법적으로 강제하면 개인의 행동상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개인을 처벌하는 것은 국가 형벌권의 정당한 범위를 벗어난다는 설명이다.
◆ 공동체의식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피해자를 돕는 과정에서 자신이 가해자로 지목될 수 있다는 점도 적극적인 구조를 제한하는 요소로 지목된다. 뽀종의 폭행 사건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특정 여부는 법적으로 가릴 문제지만, 이와는 별도로 선한 사마리아인 법 논쟁이 다시 점화된 이유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박형중 변호사는 22일 “선의의 행동에서 되레 피해를 입은 사례를 전해 들으면서 타인을 돕는 경향이 줄어들고 있다”며 “사건에 휘말리기만 해도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 참고인으로 불려다닐 수 있는 만큼 보통 사람에게 타인을 돕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한 사마리아인 법이 도입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응급·위급한 타인을 구조하지 않은 사람을 처벌하려 해도 그의 혐의를 특정할 수 없다는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 크게 다친 상태로 방치됐을 때 이를 보고 지나친 사람의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지를 규정하기 어렵다.
도덕과 법의 경계도 모호하다. 강도·절도·폭행처럼 타인에게 위해를 가한 범죄가 아니라 ‘도와주지 않은 것’만으로 민형법상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박재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