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 화재도 ‘필로티 구조’… 가성비 좋지만 재해엔 취약

입력 2018-04-22 16:34
22일 오전 10시경 불이 난 경기 오산시 갈곶동의 6층 원룸. / 사진 = 뉴시스

22일 오전 10시쯤 경기 오산시 갈곶동의 6층짜리 원룸에서 불이 났다. 불은 원룸 주변 쓰레기 수거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17명이 연기를 들이마시고 건물외벽과 지상 주차 차량 일부가 연소됐다. 화재가 발생한 원룸 건물은 1층을 벽 없이 기둥만 세운 ‘필로티 구조’로 지어졌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밀양 세종병원 화재에 이어 필로티 구조가 재해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건물 1층을 주차 공간으로 활용한 필로티 구조는 다세대·다가구 주택의 주차난 해결을 위해 도입됐다. 다세대·다가구 주택의 주차장 확보 의무가 가구당 0.7대에서 1대로 강화된 2002년부터 필로티 구조 건물은 더욱 늘어났다. 무엇보다 건축비가 저렴해 도시형 생활주택에 많이 적용됐다.

그러나 필로티 구조의 가장 큰 문제는 재해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필로티 구조는 지난해 제천 스포츠센터 참사, 밀양 세종병원 화재 등의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됐다. 필로티 구조 건물의 1층에서 불이 났을 경우 연기가 기둥 사이로 빠져나와 건물 주변을 에워싸 대피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바람이 잘 통하는 구조상 화재가 커질 수도 있다. 실제 2015년 의정부 원룸 화재에서는 넓은 면적의 주차장에 있던 공기가 좁은 면적의 건물 진입부(계단)으로 진입하면서 불길이 건물 내부로 빠른 속도로 진입했다. 제천 화재에서도 빈 공간인 1층에서 산소가 바람을 타고 건물 안으로 유입돼 불이 번졌다는 증언도 있었다.

저층부에 벽이 없는 구조이기에 지진에 취약하다는 우려도 있다. 지난해 11월 포항 지진 당시 전면 철거가 불가피하다는 판정을 받은 7개의 건물 중 6개가 필로티 구조였다. 서울시는 ‘건축물 내진성능 자가점검’ 페이지에서 지진에 취약한 건축물을 소개하고 있다. 필로티 구조로 지어진 건축물은 지진에 취약한 건축물로 분류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필로티 구조 건물은 1층이 지진에 매우 취약하다. 여러 층으로 구성된 건축물에서 인접한 층에 비해 유연하거나 약한 부재로 구성된 층을 연약층이라고 하는데, 필로티 구조 건물은 1층이 벽체가 없이 기둥만으로 구성돼 연약층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지진의 영향을 받아 파손된 포항 북구 장성동의 한 원룸 기둥. / 사진 = 뉴시스

더불어 ‘가성비’가 좋다는 점에서 비정상적인 시공이 이뤄졌을 가능성과 건물 소재 등이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단시간에 싼 값으로 주택을 공급하려는 의도에서 지은 건물이니, 시공 소재나 공법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화재 사고가 난 의정부 원룸은 ‘드라이비트 공법(단열재를 외벽으로 사용해 건물을 단열하는 공법)’을 적용한 건물이었는데, 단열재로 저렴한 스티로폼을 사용했다. 이에 ‘값싼 시공비’를 맞추려 해당 공법을 사용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이어졌다.

규제에 실효성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국토교통부는 화재 이후인 2015년 2월 불연 마감재료를 사용해야 하는 건축물 규모 기준을 6층으로 확대했다. 이전에는 30층 이상 건물에만 불연 마감재를 사용하면 됐다. 그러나 2015년 2월 이전에 지은 건물은 규제 이전으로 대상에서 벗어난다. 이는 포항 지진 이후 내진 설계 의무 대상을 확대하는 건축법 개정안에도 적용된다. 규제 도입 이전에 지어진 건물들에는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건축업계 관행도 지적된다.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소규모 주택의 경우 건축주가 직접 건설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건축업계에 따르면 건축주는 대부분 구청에 자기가 짓는다고 신고한 뒤 대부분이 비전문가에게 도급을 줘서 설계를 진행한다. 이 비전문가는 건물만 지어놓고 떠나는 경우가 많다. 이 비전문가들은 건설면허가 없어 누가 건물을 지었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건축법시행령 91조의3에는 건축사가 건축물을 설계할 때 전문가인 건축구조기술사의 협력을 받아야 하는 건축물 종류(6층 이상 건축물)가 규정돼있다. 그런데 건축물을 지을 때 건축구조 전문가에게 설계·감리를 진행해 지불되는 비용을 건축사의 수익 감소로 여기는 인식이 있어 안전 확립에 대한 장애물이 되고 있다.

국내 일부 필로티 양식(좌측)과 지진에 견딜 수 있는 필로티 양식(우측). / 김종형 인턴기자

반면 필로티 양식 자체보다는 국내 상황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필로티 양식은 근본적으로 내진성을 고려한 양식이고, 국내에서 보고된 사고 사례의 경우 정상적으로 시공이 되지 않았거나 양식 자체를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필로티 양식 건물은 저층부터 꼭대기까지 모두 기둥이 연결돼있지만 국내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필로티 양식 건물 중 일부는 전용면적을 넓히려는 이유에서 기둥을 저층부터 꼭대기까지 배치하지 않고 저층에만 배치한다. 화재나 지진 등 외부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은 주택보급률과 전용면적 등을 고려해 ‘튼튼한 집’보다는 ‘싼 집’이 우선되는 문화였지만, 지진 및 화재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안전에도 관심을 기울여야하지 않겠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종형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