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진 사무장이 전한 조양호 회장 일가 ‘갑질 매뉴얼’

입력 2018-04-21 13:34 수정 2018-04-21 16:41
사진: 박창진 전 사무장 인스타그램


‘땅콩 회항’ 사건 피해자인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이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등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일상화된 갑질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21일 공개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총수 일가가 항공기에 탑승하면 별도의 맞춤형 서비스 매뉴얼이 있다고 소개했다.

박 전 사무장이 전한 매뉴얼의 내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두 번 물어보면 안된다’ ‘말대꾸하면 안된다’ ‘탄산수를 좋아하니 물이라고 하면 반드시 탄산수를 가져다줘야 한다’ 등 깨알같은 설명이 붙어있다고 그는 전했다. 총수 일가 중에서도 누군가에겐 눈을 마주치면 안되고, 또 누군가에겐 눈을 마주쳐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승무원 체크리스트에는 ‘사모님 탑승시 핫팩을 반드시 소지하고, 일정시간이 지나면 온도를 체크해 뜨거운 물을 리필하라’는 내용도 있다. 사모님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부인 이명희씨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조 회장 가족은 항상 기분대로 행동한다”며 “서비스하는 승무원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폭로했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조 전무는 승무원을 무시하며 반말로 지시하기 일쑤였다고 박 전 사무장은 회상했다. 그는 “조 전무는 ‘물 주세요’가 아니라 ‘물’이라고 말하는 식이었다”며 “한번은 착륙할 때 좌석을 똑바로 세워달라고 해야 하는데 여승무원이 무서워 못하겠다고 해서 제가 말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당시 박 전 사무장이 “착륙 준비하겠습니다”라고 하자 조 전무는 “아 참 나”라며 짜증을 냈다고 한다.



그는 ‘땅콩 회항’ 사건 이후 산업재해를 인정받아 1년 반 동안 휴직했다. 이후 복직했지만,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됐다. 지난달 뒤통수에 난 양성종양 수술을 받은 박 전 사무장은 ‘땅콩 회항’ 사건으로 받은 불이익 외에도 업무복귀 후 동료들의 ‘뒷담화’를 견디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그는 “면세품 판매 업무를 맡았을 때 몸상태가 최악이어서 후배들에게 사정을 말하고 도움을 받았는데 다음날 블라인드 앱에 ‘일하기 싫어 주니어 승무원에게 일을 떠넘겼다’는 글이 올라왔고 악플이 달렸다”고 말했다. 이어 “사측이 저를 감시하고 유언비어를 유포한 증거”라며 “회사 노무팀에서 한 후배에게 ‘박창진 흠이 될만한 게 없느냐’고 캐물었다는 얘길 들었다”고도 했다.

박 전 사무장은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도 이런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가 전한 ‘뒷담화’의 내용은 “승무원의 수치” “조만간 미투 일어날껄” 등 인격 비하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가 수술한 양성종양에 대해 “몸 만든다고 고기를 많이 먹어서 그런 것”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현재 인사·업무상 불이익을 주장하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그는 “동료들의 자발적 복종이 안타깝다”며 “제가 소송을 제기한 것도 불공정과 반칙에 우리도 단호히 항거해야 한다는 것을 동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