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물컵 갑질’ 논란으로 경찰조사를 받고 있는 조현민 전무를 ‘대기발령’ 조치했지만 무늬만 징계일뿐 사실상 휴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일을 하지 않지만 월급을 받는데다가 대기발령이 풀리면 기존 직책·직급에 복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 전무는 현재 한진그룹 계열사 5곳으로부터 월급을 받고 있다. 임금을 지급하는 회사는 대한항공, 한진칼, 한진관광, 진에어, 칼호텔네트워크 등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대한항공은 대기발령 중에도 임금을 지급한다”며 “조 전무가 대한항공 외 다른 회사에서는 대기발령 조치 등을 받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조 전무의 출근 여부에 대해 “회사가 지정한 장소에 대기한다”고 답했다.
월급을 주면서 일을 안 시키는 대한항공의 대기발령 방식은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후록 노무사는 대법원 판례를 분석하며 “대법원 입장은 회사의 대기발령 명령이 정당하면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무방하고, 회사의 대기발령 명령이 부당하면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용어사전도 “출근을 하지 않는 대기발령의 경우, 사업장의 특정한 장소를 지정하여 출근한 경우, 임금 등 근로조건의 저하가 없다면 그 자체를 징계로 보기 어렵다”고 정의했다. 대한항공이 조 전무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이상, 대기발령 조치는 징계가 아닌 단순 휴직으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대한항공의 ‘무늬만 징계’ 꼼수에 노조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지난 17일 김성기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위원장은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한항공은) 대기발령이 풀리면 모든 직책이나 직급이 다시 살아나 현업에 바로 복귀할 수 있는 구조”라며 “동의하거나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앞서 대한항공노조·대한항공조종사노조·대한항공새노조 등 3개 조합은 조 전무의 경영일선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
고승혁 기자 marquez@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