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공모 자금 총괄책은 ‘서유기’ 아닌 ‘파로스’”

입력 2018-04-20 21:31


민주당원 여론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의 핵심인 김모(49)씨가 자금 관련 업무를 총괄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나섰다. 김씨는 경공모 회원들 사이에서 ‘파로스’로 불리며 회원 개인의 금융·신용정보 등을 총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이번 사건과 관련된 참고인 2명을 추가로 조사 중”이라며 “둘 중 한 명이 자금 출처 핵심 관계자로 추정되는 인물”이라고 20일 밝혔다. 김씨는 구속 기소된 김모씨(49·닉네임 드루킹)와 느릅나무 출판사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국민일보가 입수한 ‘경공모 규약작성을 위한 기초자료’에 따르면 김씨는 경공모 내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자료에는 ‘(경공모 회원) 부채의 규모, 범위를 확인하기 위한 담당 스태프를 파로스로 지정한다’ ‘주식의 수, 위임된 의결권의 규모는 극비사항으로 담당스태프(파로스)가 취합해 매니저에게만 보고토록 한다’고 적시돼 있다. 김씨를 경공모 내 자금 관련 업무 총괄자로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씨는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선거캠프 자원봉사자에게 돈을 건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400만원을 선고받았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계좌를 빌려준 서유기 박씨는 회계 경리직원 또는 회계 담당 직원이었다”며 “기소된 김씨가 회계 책임자였다”고 밝혔다. 경공모의 고위등급에 속하는 회원도 “김씨가 경공모 회계책임자였다”며 “경공모 회원들은 아무도 회계장부를 본 적이 없다. 김씨 조사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드루킹 일당이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댓글을 조작한 것으로 의심되는 기사 6건도 추가로 확인되면서 여론조작 작업이 방대하게 이뤄졌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해당 기사는 지난 3월 16일 ‘문 대통령 국정지지도 74%…지난주보다 3% 포인트 상승’ 등 기사 4건, 3월 18일 ‘강경화, 트럼프의 주한미군 철수 시사에 놀랐지만 주둔 확신’ 등 기사 2건이다. 김씨가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을 통해 보낸 3190건의 기사 목록에 있는 것들이다. 김씨 일당이 분야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댓글 조작을 한 뒤 자신의 능력을 보이며 김 의원을 압박했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경찰은 김씨가 해당 기사들의 댓글 공감수를 조작하기 위해 사용한 아이디 205개가 지난 1월 17일 사용했던 경공모 회원 아이디 614개와 중복된다고 설명했다. 공감수 조작은 모두 794회 이뤄졌다. 매크로를 이용한 여론조작이 광범위하게 이뤄졌을 수 있다는 뜻이다.

경찰은 김 의원과 드루킹이 대여론 작업을 위해 구체적인 대화를 나눈 사실도 확인했다. 김 의원은 2016년 11월부터 지난 3월까지 김씨에게 텔레그램으로 URL 10건을 포함해 모두 14건의 메시지를 보냈다. 김 의원이 김씨에게 보낸 4건의 메시지에는 “네이버 댓글은 원래 반응이 이런가요” “홍보해주세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당시 문재인 후보의 외신기자 간담회 일정, ‘답답해서 내가 문재인 홍보한다’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 링크 한 건도 포함돼 있었다. 드루킹이 기사 댓글 공감 순위 작업을 통해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김 의원이 직접 홍보를 부탁했다는 추정도 나온다.

김 의원이 지난해 1∼3월 해외 메신저인 ‘시그널’을 이용해 김씨와 대화를 나눈 것도 둘 사이가 특별한 관계였음을 시사한다. 미국 메신저인 시그널은 국내 메신저나 텔레그램보다 보안이 철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이 메신저를 이용해 김 의원에게 39번 메시지를 전송했고 김 의원도 16번 김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손재호 허경구 기자 sayho@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