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박애리를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고 싶어요”

입력 2018-04-20 14:13 수정 2018-04-24 11:55
소리꾼 박애리. 국립극장 제공

스타 소리꾼 박애리(41)가 21일 생애 처음으로 완창판소리에 도전한다. 김세종제 ‘춘향가’를 한 대목도 생략하지 않고 6시간 동안 부를 예정이다. 박애리는 2003년 MBC 드라마 ‘대장금’의 주제가 ‘오나라’를 불러 이름을 알렸다. 2015년 서울 중구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을 떠났다. 이후 KBS2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 남편 팝핀현준(본명 남현준·39)과 퓨전국악 무대를 꾸미면서 인기를 얻었다.

“완창으로 ‘내가 생각하는 나’ 되찾고 싶어요”

“판소리하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번 보여드리고 싶어요. 또 제 소리를 단단히 다지길 바랍니다.” 최근 서울 마포구에 마련된 개인 연습실에서 만난 박애리는 완창판소리에 도전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국립창극단에서 17년 가까이 있으면서 수없이 많은 창극에 출연했다. 멀게만 느껴지는 국악을 대중매체에 나와 다가가기 쉽게 선보였고 좋은 반응까지 얻었다. 아쉬울 게 없을 법도 하다. 하지만 박애리는 그동안 한편으로 고민이 깊었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나’랑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나’가 너무 달라지는 것 같았어요.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었죠. 32년 전부터 해온 것이 판소리인데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퓨전판소리와 크로스오버 무대이니 조금 두렵더라고요. 제 뜻과 달리 소리꾼으로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소리꾼 박애리’를 다시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박애리가 이런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대상은 비단 관객만은 아닐 테다. 자신에게도 소리꾼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줘 정체성을 강화하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리스펙’ 판소리하는 나 자랑스러워해

완창판소리에 도전하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가족들과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의 든든한 지원이다. 특히 팝핀현준은 박애리가 판소리를 하는 걸 굉장히 멋있게 여긴다고 한다. 연습할 때 다른 부탁도 하지 않고 공연이 원만하게 잘 끝날 수 있도록 지켜봐 준다고 한다. “대단하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어떻게 6시간을 할 수 있느냐며 묻기도 하고요. 남편 표현으로 ‘리스펙(존경)’한다고 하더라고요.”

김 감독은 박애리가 공연할 때 진행과 해설을 맡아 힘을 보탠다. 완창판소리를 처음 제안했던 것도 김 감독이다. “감독님이 대중들과 활발히 소통하는 것이 보기 좋은데 이런 것만 하는 사람으로 비칠까 봐 걱정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그런 걱정이 있었어요.”

완창판소리는 소리꾼들이 꿈꾸는 무대다. 하지만 막상 공연을 결심하기는 쉽지 않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도와준 촉매가 어쩌면 김 감독이다. “올해는 꼭 해야지. 조금 더 연습을 많이 해서 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미룰 수 있는 것을 선뜻 해보라고 조언해주셨어요. 감독님도 선뜻 수락해줘서 고맙다고 하셨어요.”

소리꾼 박애리. 국립극장 제공


‘춘향가’가 관객들 눈앞에 영상처럼 펼쳐졌으면

왜 굳이 ‘춘향가’일까. 춘향가는 박애리에게는 ‘초심(初心)’ 같은 소리다. “처음 배운 소리가 춘향가이고요. 가장 많이 부른 소리도 춘향가예요. 자다가도 할 수 있는 소리가 춘향가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춘향가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춘향가는 판소리 다섯 바탕(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 중 가장 짜임이 튼튼하다.

대목 중에는 ‘갈까 보다’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처음 배운 대목이기도 하고요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세요. 이 대목을 선생님 앞에서 처음 불렀는데 ‘아이고, 얘는 소리 해야겠네’ 하시더라고요.” 가장 재밌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어사 상봉’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목인데 창극으로 봐도 재밌지만 1인극으로 봐도 재밌어요.”

이런 대목을 염두에 두고 완창판소리를 듣는다면 더욱 재밌겠다. 완성도가 높다 보니 이야기 전달이 중요하다. “저는 연습하거나 공연할 때 가끔 이야기가 눈앞에 영상처럼 펼쳐질 때가 있어요. 남원을 풍경으로 춘향이가 그네를 뛰어노는 그림처럼요. 관객들에게도 이런 영상이 펼쳐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연습해요.”

소리꾼 박애리. 국립극장 제공

관객과 6시간 동안 대화 나눈다는 마음가짐으로

아무리 좋은 공연이더라도, 훌륭한 소리꾼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공연장에서 6시간 동안 앉아있는 건 적지 않은 각오가 있어야 한다. 물론 중간에 두 차례 쉬는 시간을 갖는다. 긴 시간 함께하는 관객들을 위해 박애리 측에서 떡도 준비했다. 그럼에도 가만히 앉아 있기에도 긴 시간이다. 그런데 박애리의 설명을 들으니 그렇게 마냥 힘들 것 같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끔 대화하다가 6시간을 넘기는 경우도 있잖아요. 쉬지 않고 이야기하고 그걸 들어주기도 하죠. 판소리는 긴 이야기인 것 같아요. 어떨 때는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했다가 어떨 때는 그림처럼 펼쳐서 보여주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거죠.”

박애리는 무대에 서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체력관리를 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편이다. 음주도 자제하고 건강식도 자주 챙겨 먹는다. 덕분에 완창판소리를 앞뒀다고 체력관리를 위해 따로 특별히 뭔가 하는 건 없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완창판소리를 보러 국립극장 하늘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한마디 남겼다. “판소리를 했을 때 박애리가 가장 잘 어울리는구나. 이렇게 느끼실 수 있으시리라 생각해요. 판소리는 TV와 현장에서 듣는 게 완전히 다르거든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렇게 좋은 것이었다니 느끼시고 계속 즐기실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권준협 기자 ga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