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4·13 총선 때 유승민 경쟁자 연설문 써줬다

입력 2018-04-20 06:32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6년 4·13 총선을 앞두고 유승민(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새누리당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하기 위해 경쟁 후보자의 연설문까지 직접 써서 하달했다는 법정 증언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성창호) 심리로 19일 열린 박 전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은 청와대 정무수석실 주도로 친박(친박근혜)계 인물들을 대거 당선시키기 위해 불법 여론조사 등의 조직적 개입을 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당내 경선을 앞두고 대구 동구을 지역구에서 비박계인 유 의원의 지지도가 높게 나오자 박 전 대통령이 “대항마를 내세우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이 낙점돼 “배신의 정치를 응징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지만 유 의원 지지율이 줄곧 압도적으로 높았다. 박 전 대통령은 현기환 당시 정무수석에게 “이재만이 연설을 잘 못한다”고 채근했으며, 경선이 임박한 2016년 2월에는 자신이 손수 쓴 연설문을 친전 형태로 내려보냈다고 한다.

검찰이 “현 전 수석이 정무수석실로 들어와 서류봉투에서 A4용지 4∼5장 분량의 연설문을 꺼내 흔들면서 ‘이것 봐라, 할매(박 전 대통령)가 직접 연설문을 보냈다’고 한 적이 있느냐”고 묻자 신 전 비서관은 “그렇다”고 답했다.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이 전 청장을 단수 후보로 공천하기로 했지만, 김무성 당 대표가 이른바 ‘옥새 파동’을 벌이며 강하게 반발하자 결국 해당 지역구 후보 공천을 포기했다. 유 의원은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신 전 비서관은 이한구 당시 공천관리위원장과 첩보 작전을 방불케 하는 방식으로 선거 전략 관련 자료를 주고받았다는 증언도 했다. 현 전 수석과 이 전 위원장이 정기적으로 만나 총선 전략을 논의한 사실이 언론에 노출될 뻔한 일을 겪은 뒤로는 정무수석실 소속 직원을 창구로 은밀히 의논했다고 한다. 이 전 위원장이 당사 앞에서 차를 타고 대기하고 있으면 직원이 스치듯 지나가며 창문 안으로 서류를 넣었다고 신 전 비서관은 말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