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이 피감기관 지원을 받아 해외출장을 가는 관행에 대해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은 “복잡하게 볼 것 없다”며 “청탁금지법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이 관행은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의원 시절 해외출장 문제로 논란이 됐다. 청와대는 19대와 20대 국회에서 이 같은 출장이 167차례나 있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전수조사’를 하자고 제안한 상태다.
박은정 위원장은 19일 기자간담회에서 “국회의원이 피감기관 지원을 받아 출장 가는 건 청탁금지법에 위배된다고 생각한다”며 “권익위 자문단의 법률가들도 압도적 다수가 위배로 보고 있고 소수만이 행사 목적과 취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복잡하게 볼 것 없이 국정감사 기간이든 아니든 국회의원과 피감기관은 국정감사를 통한 지도감독 관계에 있으므로 직무관련성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또 "국회의원이 피감기관 돈으로 출장을 가는 경우는 청탁금지법에서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카테고리에 해당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다만 김기식 전 금감원장의 경우에 대해선 “청탁금지법 제정 전의 일이므로 이 법은 적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지난 13일 “국회의장 지휘로 피감기관 해외출장 사례를 전수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전수조사”를 제안했다. 그러나 정당마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차이는 극명하다.
민주당과 민주평화당·정의당의 공동교섭단체인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은 찬성의 뜻을 밝혔지만 자유한국당은 청와대의 ‘정치음모론'을 제기하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바른미래당은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여당이 자당 소속 의원들의 문제점이 나타날 경우 처벌할 용의가 있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고 조건을 내걸었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18일 JTBC ‘국회 교섭단체 원내대표 4인 긴급토론'에서 "이제껏 국회의원들이 피감기관의 돈을 받아 출장을 가는 문제를 깊게 살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그 기준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 전 원장 스스로도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는데 그의 사퇴는 국회 입장에서 봐도 굉장히 아픈 일이고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엄격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그동안 해외출장이 어떻게 이뤄져 왔는지를 전수조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회찬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 원내대표는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해 있는 만큼 전수조사 문제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며 "조사를 해서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하고, 잘못된 관행이 있다면 이번에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저희 당은 전수조사에 반대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며 "단 민주당은 조사 결과 자당에서 문제가 나오면 철저하고 완벽하게 처벌할 용의가 있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야당 의원에 대한 잘못이 나온다고 해서 김 전 원장이나 청와대의 잘못이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전수조사는 청와대가 김 전 원장을 비호하기 위해 입법부를 모욕주면서 여론을 호도하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며 "청와대가 나서서 전수조사라는 이름으로 국회를 사찰한다면 이는 헌정 유린이고 국회를 탄압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김 전 원장의 낙마가 이뤄졌으니 앞으로 갑질 외유 출장 문제는 국회 차원에서 개선을 해야한다"며 "단 청와대가 전수조사를 제안하는 건 정치음모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기식 전 금감원장의 외유성 해외출장, 공직선거법 위반과 관련해 ‘국회의원 전수조사’를 요구한 청와대 국민청원은 동의 20만명을 넘어 곧 공식 답변을 받게 됐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16일 ‘선관위의 위법사항 내용에 따른 국회의원 전원 위법사실 여부 전수조사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등록됐다.
청원에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자금법 위반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확인되는 전/현직 국회의원 전체에 대한 위법성 관련 전수조사를 청원하는 바”라며 “위법으로 판단이 내려지는 국회의원 전원에 대한 형사 처벌 및 세금 환수를 요청한다”고 했다. 청원이 올라온 지 이틀 만인 18일 오전 10시경에 청원 동의자 수가 20만명이 넘어 답변을 얻을 수 있게 됐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