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4·13총선서 유승민 낙선시키려 경쟁후보 연설문 써줘”

입력 2018-04-19 14:35

“할매가 직접 연설문 보내줬다”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6년 4·13 총선 때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이 신동철 정무비서관에게 서류봉투를 흔들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는 증언이 법정에서 나왔다. ‘할매’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뜻하고 ‘연설문’은 대구 동구을에 출마했던 이재만 전 동구청장을 위한 것이었다.

이재만 후보는 현재 바른미래당 공동대표인 유승민 후보와 경쟁하고 있었다. 유승민 후보는 박 전 대통령에게 “자기 정치”를 한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아 대립 관계에 놓여 있었다. ‘유승민 대항마’인 이 후보가 연설이 약해 유 후보에게 밀린다는 평가가 나오자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연설문을 써줬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성창호) 심리로 19일 열린 박 전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차 공판에는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증인석에 앉았다. 신 전 비서관은 20대 총선 당시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 밑에서 근무하며 공천 개입 활동의 ‘실무’를 담당한 것으로 지목돼 왔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공천 개입 활동을 보고받았고 특정 경선후보 연설문도 직접 써줬다고 증언했다.

신 전 비서관은 법정에서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유승민과의 갈등으로 대구 동구을 지역구에 끝까지 친박 대항마를 내세우라고 지시했느냐"는 검찰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신 전 비서관에 따르면 이는 유승민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하려는 의도였다. 정무수석실은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을 경쟁후보로 내세워 2015년 12월까지 여론조사를 벌였으나 지지도는 계속 하락했다.

신 전 비서관은 "박 전 대통령이 현 전 수석에게 전화해서 ‘이재만이 연설을 잘못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이 보낸 연설문이 현 전 수석에게 전달됐고, 현 전 수석은 함께 있던 신 전 비서관에게 연설문 봉투를 흔들어 보이며 “이거 봐라 할매가 직접 연설문 보냈다”고 말했는 것이다. 그는 "연설문은 A4용지 3~5매 분량이었고 내용을 보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증언 과정에서는 청와대가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 구성에도 관여한 정황도 나타났다. 신 전 비서관은 2016년 초에 자신과 현 전 수석, 최경환·윤상현 의원이 모여 총선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현 수석이 '박 전 대통령이 공천관리위원장을 이한구로 하라고 했다'는 증언도 내놨다. 최 의원은 반대했지만 현 전 수석은 “이미 정해졌으니 내가 연락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신 전 비서관은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이 현기환 전 정무수석에게 선거 및 공천 전략을 수립하도록 여론조사를 지시했나" "박 전 대통령은 여론조사 관련 보고를 실시간으로 받았나"라고 묻자 모두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날 박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오지 않았고 재판부는 궐석재판으로 진행했다. 박 전 대통령은 현 전 수석과 공모해 2015년 11월~2016년 3월에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지지도가 높은 지역에 친박 인물을 대거 당선시키려고 친박리스트 작성, 공천관리위원 추천 등을 기획하고 친박 인물(정당포함) 지지도 여론조사 등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