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 58주년을 기념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릴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열리는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반면 대여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자유한국당 지도부는 불참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기념식은 오전 10시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 위치한 민주묘지에서 열린다. 이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지도부가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야당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김성태 원내대표는 국회 계단 앞 관정에서 대여 투쟁을 이어갈 예정이어서 기념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
다만 홍문표 사무총장이 이들을 대신해 4.19 혁명 민주묘지를 찾을 예정이다. 4.19 혁명은 1960년 4월 학생들을 중심으로 일어나 반정부 민주주의 혁명이다. 시위대는 이승만 정권의 부정 선거에 항의해 민주적 절차에 의한 정권 교체를 요구했다.
1960년 3월15일 실시된 자유당 정권의 불법‧부정 선거에 항거하며 시작됐다. 당시 정‧부통령 선거에 많은 공무원들이 이승만과 이기붕의 당선을 위해 동원됐다. 또 내무부와 각 도의 경찰이 실질적인 선거본부가 돼 투표 총계를 조작했다.
야당 선거운동원들은 경찰의 탄압을 받아야 했으며 이승만을 지원하는 반공청년단의 폭력단원들은 선거 당일 시민들의 투표를 감시하기도 했다. 경찰은 공개적으로 자유당후보를 지원했고 선거 결과는 경찰지휘부와 내무부에 의해 날조됐다.
결국 이승만은 총투표수에서 당선에 필요한 3분의 1보다 2배 이상 많은 표를 얻었고 이기붕은 840만 표로 부통령에 당선됐다. 선거 전후 전국 각지에선 부정선거와 불법선거를 규탄하는 반정부시위가 일어났다.
4월 초 마산 시민들은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가담했다가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바다 속에 버려진 마산상업고등학교 학생 김주열의 주검을 발견하면서 학생들의 시위가 시작됐다.
이승만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조종된 것이라는 내용의 담화를 4월 15일 발표했고 젊은 청년들을 폭동으로 유도‧선도한 정치적 야심가와 공산주의자들의 선전활동에 대해 경고했다. 18일엔 서울에서 시위하던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경찰의 비호를 받는 반공청년단의 습격을 받았다.
다음날 3만 명에 이르는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거리로 나왔고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 이날 서울에서만 자정까지 약 130명이 죽었고 1000여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부산과 대구, 광주, 인천, 목포, 청주 등 주요 도시에서도 수천 명의 학생들이 가세했다.
경찰이 시위대에 발포하기 시작한 직후 전국 주요도시에 계엄령이 선포됐으며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송요찬 중장이 서울지구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됐다. 4월19일 이후에도 시위가 이어졌으며 일반 시민들도 가담했다. 반면 군대는 사태를 방관했다.
시위대는 이승만의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했지만 이승만은 자유당을 비롯한 사회단체와 결별하고 경찰을 포함한 정부관리들이 정치에 간섭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4월25일 각 대학 300여명의 교수들이 이승만의 사임을 요구하는 제자들을 지지하면서 서울시내 행진을 시작했다.
다음날은 새 외무부장관 허정과 계엄사령관 송요찬, 주한미대사였던 W.P.매카나기의 충고를 받아들여 이승만은 정·부통령의 재선거와 대통령중심제에서 의원내각제로의 개헌을 약속했다. 미국의 압력, 경찰력의 붕괴, 군으로부터의 지지결여 등에 직면한 이승만은 1960년 4월 26일 결국 사임을 발표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