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권오준 회장이 임기를 2년 가까이 남겨둔 상황에서 18일 돌연 사임 의사를 밝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포스코의 최고 경영자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잔혹사’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모양새다.
포스코 이사회는 이날 서울 포스코센터에서 임시이사회를 열어 권 회장의 사의를 수용했다. 권 회장은 이사회 후 기자들과 만나 “100년 기업 포스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젊고 유능한 인재가 CEO(최고경영자)를 맡는 게 좋겠다”고 밝혔다. 포스코는 권 회장 사임에 대해 “피로가 누적돼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조언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권의 압력설이나 검찰 내사설은 전혀 관련이 없다”고 이례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권 회장은 박근혜정부 당시인 2014년에 취임한 뒤 지난해 연임에 성공했다. 임기가 2020년 3월까지 보장돼 있었다. 포스코는 권 회장 취임 이후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지난해에는 사상 최대 영업 이익을 기록했다. 이달 초엔 포스코 창립 50주년 행사를 열고 기자간담회를 2시간 가까이 진행하며 적극적인 경영 의지를 보였다. 당시 권 회장은 CEO 교체설과 관련해 “저희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정도에 입각해서 경영을 하는 것이 최선책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권 회장이 돌연 사퇴를 선택하게 된 배경엔 다른 정치적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권 회장은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방미 경제인단 등 대통령 행사에서 계속 배제되면서 CEO 교체설에 휘말려 왔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연루됐다는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무혐의 처분을 받긴 했지만 ‘적폐 청산’을 내건 현 정부와는 코드가 맞지 않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많았다. 최근에는 포스코건설이 검찰 수사를 받는 등 논란이 계속됐다. 하지만 개인적인 비리는 아직 드러난 게 없다.
포스코는 정권교체 때마다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민영화된 지 18년이나 지났지만 정권이 바뀌면 곧 포스코 회장도 바뀌는 법칙은 이번에도 예외가 없었다. 확실한 대주주가 없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주식을 10% 정도 보유하고 있는 것도 포스코가 정치적 외풍에 시달리는 요인이 됐을 수 있다.
포스코는 조만간 권 회장과 사외이사 5명으로 구성된 ‘CEO 카운슬(council)’을 꾸려 후임 회장 인선에 착수한다. 권 회장은 차기 회장 선임 때까지는 업무를 수행한다.
임성수 유성열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