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민중의 지팡이란 이런 것!” 쓰레기 더미에서 생활한 할머니 구한 경찰관

입력 2018-04-18 15:02
쓰레기를 모아둔 할머니의 집안 내부 (사진=부산경찰청 제공)

너무나 사랑하는 가족, 죽을 때까지 함께하고 싶은 친구,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연인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내 곁을 떠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아마 세상과의 모든 연결 고리를 잃어버린 기분일 겁니다. 10년 전 아들을 사고로 잃은 부산의 한 할머니 역시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그 결과 마음의 병을 얻었습니다.

할머니는 평소 폐지 등을 모아 파셨습니다. 그러나 몇 개월 전부터는 몸이 좋지 않아 폐지를 팔 수 없게 되면서 집안은 쓰레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주방과 안방은 쓰레기로 가득 찼고 발 디딜 틈조차 없게 됐습니다.

지난 10일 악취가 집에서 새어나가자 주민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민원 신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관할 주민센터는 여러 차례에 걸쳐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설득했으나 할머니는 거부했습니다.

부산 남부경찰서 광민지구대의 송국근 경장과 박현규 순경은 그런 할머니를 도와드리기 위해 사흘 동안 할머니 댁을 방문하며 끈질기게 설득했습니다. 송 경장과 박 순경은 “할머니가 나이가 많으시고 워낙 사람들과의 교류가 적었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는데 소극적이셨다”며 “혹시나 쓰레기로 인해 할머니의 건강이 나빠지진 않을까, 사고가 나진 않을까 걱정돼 순찰이나 야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면서 수시로 할머니 댁을 방문하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습니다.

할머니의 집에서 치운 쓰레기 (사진=부산경찰청 제공)

할머니를 걱정하는 그들의 진심이 통한 걸까요? 처음엔 완고하시던 할머니도 차츰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는 계속해서 집으로 찾아오고 안부를 여쭙는 그들에게 결국 마음을 열었습니다.

송 경장과 박 순경은 “형식적인 일회성 만남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들여다보면서 마음이 통했던 것 같다”라며 “우리는 그저 우리가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다. 어디를 순찰하고 살펴봐야 우리 이웃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한다. 그래서 할머니도 도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열심히 일할 것이다”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지난 13일 경찰은 관할 주민센터담당자와 자원 봉사자들의 협조를 받아 할머니의 집을 깨끗하게 청소했습니다. 할머니는 집 안 청소를 마치고 인근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치료가 끝나면 경찰관들의 따뜻한 마음과 봉사자분들의 노력으로 예쁘게 꾸며진 집으로 다시 돌아오실 예정입니다.

깨끗하게 청소된 집안 내부(사진=부산경찰청 제공)

17일 부산 남부경찰서 광민지구대를 통해 이 사연이 전해지자 해당 경찰관들을 칭찬하는 응원의 글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정말 훌륭한 경찰관들! 감동적이고 대단하다” “역시 진심은 통하네요. 정말 잘 됐어요” “정말 멋져요! 아주 훌륭한 경찰의 면모를 보여줬네요” “할머니! 다시는 물건 쌓아두지 마시고 깨끗한 곳에서 편히 쉬세요. 도움 주신 경찰관님 고맙습니다”라며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남모르는 죽음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 그 자체입니다. 고독 속에서 하루하루 위태로운 생활을 하는 우리의 이웃에게 따뜻한 손길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송 경장과 박 순경처럼 소외된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관심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신혜지 인턴기자